5) 니도 맞은 편 ⦁ 살모네 앞을 지나 ⦁ 그레데 해안 항해
(1) 지명 연구
① 니도
니도(Knivdo" : knee'-dos : 크니도스)는 ‘찔레’라는 뜻이다.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때 들렀던 로도섬의 맞은 편이다. 현재 터키의 닷차(Datça)이다.
② 살모네
살모네(Salmwvnh : sal-mo'-nay : 살모네)는 ‘진동’, ‘큰 파도’ 등에서 유래 됐다. 현재 케이프 시데로스(Cape Sideros)이다.
③ 그레데
그레데(Krhvth : kray'-tay : 크레테)는 ‘버림’이라는 뜻이다. 이탈리아 이름은 칸디아(Candia)이다. 또 고대에 있어서 아카디아 사람들은 `갑다라'(Kaptara)라고, 애굽 사람들은 `겝듀'(Keftiu)라고 히브리인들은 `갑돌'(Kaphtor)이라고 불렀다. 현재에도 그레데(Crete)로 불린다.
(2) 역사적 배경
① 니도
소아시아의 남서부에서부터 에게해로 길이 65㎞나 돌출해 있는 가늘고 긴 니도 반도의 서단이스칸딜 갑(Iskandil Burnu)에 있던 성읍이다. 희랍 식민에 의해 발전한 성읍인데, 특히 포도 산지로서 알려져 있으며, BC 6세기에는 멀리 애굽까지 수출했다. 여기에는 프락시텔레스(Praxiteles) 작의 유명한 `아프로티테 여신의 대리석상'이 있었다. BC 129년 로마의 아시아 속주(屬州)에서 자유시로 되었다. BC 2세기에는 이미 유대 식민이 진행되고 있었다(마카비 1서 15:23). 이 곳은 소아시아의 남안과 서안과의 접경 대이며, 지금까지 남안의 무풍지대를 평온히 항해하던 배는 넓은 에게 해를 불어 내려오는 북풍을 받아 위험에 부딪치는 일이 종종 있다.
② 살모네
그레데 섬의 동북쪽에 있는 갑(岬)인데 오늘날의 시데로스갑(Akra Sidherus)이다. 로마로 가던 바울의 배가 에게해에 나와 강한 서북풍을 만나 선장은 진로를 바꾸어 이 살모네 갑의 한바다를 남하하여 그레데 섬에 바람을 피하여 서쪽으로 진행하려 하였다(행 27:7).
③ 그레데
희랍 본토의 남단에서 96㎞ 지점 에고해의 가장 남쪽에 있는 지중해의 섬이다. 동서는 약 256㎞,남북은9.6-56㎞이며, 면적은 8,372㎢ 이다. 크기에 있어서 이 섬은 지중해에서 시칠리아섬(Scily Ⅰ.), 사르데냐 섬(Sardegna Ⅰ.), 그레데 섬이 세계사에서 가장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것은 BC 2000-1400년까지 계속된 에게 문명의 중심지로서이다. 그 문명은 극히 높고, 그 미술은 고대에 있어서 제 1급에 속했으며, 많은 다채도기(多彩陶器), 돌, 용기, 금장신구 등이 출토되고 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유명하고 또 그 문화의 집약이라고도 생각되는 것은 그노쏘스에 있는 미노아 궁전이다. 이것은 극히 큰 것인데, 170-180m×160-170m의 면적에 부분적으로는 4층, 단층 만에도 100개 이상의 방이 있다. 그리고 이 궁전은 벽화로 장식되어 있다. 또 그레데 문자라고 불리는 회화문자(繪畵文字)가 BC 2100-1150년에 이곳을 중심으로 쓰여 졌다(현재 이것은 부분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미노아 궁전은 BC 1400년(희랍인의 침입)엔가 BC 1200년(도리어인의 침입)엔가 파괴되었다고 추측된다.
그레데에 있는 성읍 골투나(Gortyna)는 로마의 총독 루기오(Lucius)가 유대인의 대우를 잘 하도록 편지를 써 보낸 성읍 중 하나이며(마카비아 1서 15:23) BC 2세기경에는 상당수의 유대인이 이미 살고 있었다. 또 BC 3세기 말부터 그레데는 해적의 근거지로 된 듯하나, BC 67년 로마의 메텔루스(Metellus)군은 그들과 싸워 정복하여 이를 로마의 통치하에 두었다. 그러므로 그레데는 구레네와 더불어 로마의 원로원이 관할하게 되었다. 초대 교회 시대에 그레데인이 극히 자연스럽게 예루살렘 등지에 와 있었음을 엿볼 수 있다(행 2:11).
기독교도 일찍부터 이 섬에 전해져 있었다. 바울은 이곳의 낮은 도덕적 상태를 한탄했다.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장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장이라"(딛 1:12). 이것은 그레데의 시인 에피메니데스(Epimenides)의 말이다. 디도는 그레데 성읍의 교회를 감독하고 유대 교화의 경향을 배우기 위해 파견되었다(딛 1:5). 그레데는 쓰스신(Zeus) 예배의 주요 성소의 하나였다. 전설에 이 섬의 이다 산(Mt. Ida) 또는 디그데(Dicte) 굴을 쓰스신의 탄생지로 하고 있다. 미노스(Minos)는 쓰스의 아들인데, 미노안 문화(Minoan civilization)로서 알려져 있는 본도 문화의 창시자이다. 1900년 이후의 발굴은 미노스 신전의 웅장함에 대한 고담이 실질적 기초를 가지고 있었음을 분명히 하였다.
주요한 종교적 상징은 두 날 가진 도끼 라브루스(lavbru"=pevleku")였다. 상술한 바와 같이 일찍부터 회화 문자가 사용되고, 상당히 고도한 문화가 발달하고, B.C.1500년경에는 매우 진실한 선상서체(Linear Script)를 사용하기에 이르렀다. 이 선형 문자는 벤트리스(Michael Ventris)에 의해 1954년에 해독되면서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최고형의헬라어였음이 알려졌다. 베니게인은 그들의 알파베트를 이 서체에서 얻었다는 설도 있다. B.C. 1400년 경 대미노아 궁전은 화재를 만나 그 문화는 단절되었다. 블레셋 사람은 이 재해의 직후 그레데 섬에서 이동했다고 생각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다. 이 섬에는 많은 독립 성읍이 있었으며, 그 중 어떤 것들은 특히 골디나(Gortyna)에는 BC 2세기의 중엽 이전에 많은 유대인이 식민하고 있었다. 로마 다음에 그레데는 비잔틴 제국의 속령이 되었다. 823년에는 사라센 제국령, 961년에는 비잔틴 지배하로 복귀했지만, 제 4차 십자군(1204) 후에 베네치아(Venezia)에 귀속되었다. 1669년에는 토이기가 이를 점령했다. 현재는 희랍령이며 수도는 북안의 간디아이다. 1990년 이후 에반스(Sir Arthur E\vans)와 기타 인사들의 발굴, 연구에 의해 미노아 문화로서 알려져 있는 고대 문화가 분명해졌다.
(3) 성경 본문
(행 27:7)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
항해 중 강풍이 불어 여러 날 만에 그레데(Crete)섬의 남쪽 항구인 미항(Fair Heavens)에 기항하였다.
니도·살모네·그레데 해안 항해 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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