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무라
(1) 지명 연구
무라(Muvra : moo'-rah : 뮈라)는 ‘몰약’이라는 뜻이다. 현재 지명은 뎀레(Demre)이다.
(2) 역사적 배경
소아시아의 루기아 지방의 남안(南岸)에 있던 성읍이며, 애굽과 로마의 직접 항로(直接航路)에 있는 항구였다. 성읍은 안드리아카(Andriaca)를 해항(海港)으로 하고 4㎞ 내륙에 있었지만, 그 이름은 이 해항까지도 포함하고 있었다. 헬라 시대에는 65㎞ 서쪽에 있는 바다라가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로마 시대에는 무라가 그를 대신하여 루기아의 주요한 항구로 되고 테오도시우스에 가루기아의 도성으로 하였다. 이 항구는 이탈리아와의 알렉산드리아의 곡물 통상으로 발전되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선박은 레반트(Levant)의 연안 항로를 취하지 않고 편서풍을 이용하여 지중해를 횡단, 알렉산드리아에서 루기아로 통상 항로를 취하였다. 무라는 중세기에 이르기까지 중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 시대에는 이무라 성읍의 감독이 성 니콜라우스(St. Nicolaus)였다. 후에 그는 동(東)지중해를 항행하는 수부(水夫)들의 수호성도(守護聖徒)로 존승 되었다. 산타클로스는 그의 숨은 높은 덕에서 나온 전설이다.
로마시대는 무라가 루기아 주(州)의 수도로 고대 그리스의 큰 극장과 석회암 지대를 깎아 만든 많은 무덤들이 있다.
(3) 성경 본문
(행 27:6)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
시돈에서 무라까지는 해안을 따라 정상적으로 항해한다면 약 10일정도 걸렸다. 백부장은 무라에서 바울 일행과 죄수들을 알렉산드리아 호(Alexandria Ship)라는 큰 배로 갈아타게 하였다. 이 큰 배는 곡창지대인 애굽에서 곡식을 싣고 이탈리아로 가는 곡식 수송선(grain ship)이다.
2세기의 작가이며 여행자 루시안(Lucian)은 말하기를 알렉산드리아 호의 길이는 174 feet(로마 180feet), 승무원은 군대 같다고 말하였다. 사학자 요세푸스(Josephus)는 이 배는 600명이 승선할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번 사도 바울이 탄 배에는 276명이었다(행 2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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