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에베소 <2차 전도여행 지역>
(1) 지명 연구 (2차 전도여행 참조)
에베소(ef'-es-os : 엡헤소스)는 헬라어로 ‘인내’라는 뜻이다.
최초의 지리학자인 스트라보에 의하면 에베소란 말은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활동한 것으로 추측되는 아마존 사람들의 여왕이름인 ‘아빠소스’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빠소스 ‘꿀벌’ 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현재 지명은 셀축(Selçuk)이다.
(2) 역사적 배경 (2차 전도여행 참조)
에베소는 B.C. 1400년경 아마존 족속들에 의하여 처음 시작되었다. 그러나 에베소를 발전시킨 것은 아테네의 왕자였던 안드로클루스(Androclus)였다. 그에 의해 B.C. 1000년경 이 지역에 이오니아인들이 들어오고 에베소는 발전을 하게 되었다.
에베소 전설에 의하면 안드로클루스가 도시를 세우기 위해서 관습에 따라 델피에서 “생선과 산돼지와 불이 함께 만나는 곳에 도시를 세우라” 는 신탁을 받았는데, 에베소 지역에 이르러 부하들과 생선을 구워먹던 중 불똥이 튀어 코레소스 산에 불이 나고 말았다. 이때 숲에서 산돼지가 달려 나왔는데 그것을 보고 이곳이 바로 신이 원하는 장소라고 생각을 하고 그곳에 도시를 세우고 산돼지 상을 건립하였다.
소아시아 지역의 해변은 리아스식으로 항구가 들어서기 좋은 조건이다. 이 해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많은 강들이 있어서 내륙으로 통하고, 이 강들에 의하여 형성된 계곡은 항구와 연계되어 사람들이 왕래한 통로가 되었고 이 통로를 따라 도시들이 세워졌다.
에베소에 흐르는 강은 고대에 카이스터(Cayster)강으로 불렸던 북 멘 데레스 ( K. Men Deres) 강에는 밀레도 (Miletus)가 있다. 에베소는 이런 강의 계곡을 통하여 다른 도시들과 연결되어 있고, 풍부한 물과 비옥한 토지와 바다, 그리고 카이스터 강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천연항구 등으로 거대도시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카이스터 강의 천연항구는 상류에서 흘러온 진흙으로 점차 메워졌다. 항구가 그 기능을 상실할 것을 우려한 당시의 이 지역 지배자 버가모의 앗탈루스 필라텔푸스 (Attalus Philadelphus)왕은 항구의 입구를 좁게 하면 유속이 빨라져 항구가 패여 나가 더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방파제를 건설하였으나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 오히려 퇴적작용이 더 빨라져 항구가 더욱 좁아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결국 오늘날에는 현재의 해변으로부터 6-8km 떨어진 내륙 습지대에서 에베소 도시의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에베소에서는 안드로쿠스에 의하여 도시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아르테미스(Artemis)여신을 숭배하였다. 바울도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 이 여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고발당하였다.(행 19장). 에베소에는 거대한 아르테미스 신전이 건설되었는데 B.C. 356년 알렉산더가 태어나던 날 페르시아가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불을 질렀는데 그 불길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B.C. 334년에 알렉산더는 이곳의 페르시아인들을 물리치고 에베소를 차지하였는데 시민들은 건축가 디노크라테스(Dinocrates)를 중심으로 불타버린 신전을 재건하였다.
에베소 사람들은 아토스 산에 알렉산더의 입상을 세웠는데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알렉산더의 제안을 “신이 신에게 제물을 바칠 수는 없다”는 아첨의 말로 거절하였다.
알렉산더 사후에 에베소를 차지한 그이 4대 장군 중 한명이었던 리시마쿠스 (Lysimachus)는 저지대의 거주자들을 고지대로 이주시키면서 에베소를 재건하였다. 그러나 리스마쿠스는 셀레우코스 1세에게 패하여 살해되고 에베소는 셀레우코스 왕조 지배에 들어가게 되었다.
B.C. 133년 버가모의 마지막 통치자 앗탈루스 3세가 죽으면서 통치권을 로마에 넘겼고, 이후 몇차례의 반란이 일어났으나 B.C. 64년 이후 완전하게 로마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로도 에베소는 아시아의 요충지로서 2세기 동안 화려한 영광을 누렸다.
에베소가 폐허가 된 것은 지진과 질병 때문이었다.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고 게다가 항만에 토사가 쌓이면서 습지가 되고 여기에 모기가 생겨 말라리아가 유행하여 사람들은 에베소를 떠났다. 12세기에 회교도인 셀주크 투르크인들이 쳐들어오면서 이곳의 기독교인들은 정든 곳을 버리고 이주해야 했다. 이후 도시의 유적들은 보존되었으나 많은 기독교 유적들은 파괴되고 사라졌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마리아의 집, 누가의 무덤 , 성 요한 교회와 무덤 등이 있다.
에베소 이름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B.C. 13세기경의 헷족속의 비문에 아파사스로 불렸던 도시가 바로 이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아나톨리안이 B.C. 10세기 경 부터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에베소는 교통의 요지이며, 수출 무역항이며, 상업도시이며, 로마제국의 소아시아 지방의 수도였다.
신약시대 당시 에베소는 인구 약 250,000명이 사는 세계에서 4번째 큰 도시(로마·알렉산드리아·시리아의 안디옥 다음으로)였다.
A.D.431년에는 제3차 공의회가 에베소에서 개최되었다. 제1차공의회는 A.D.325년 니케아에서, 제2차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되었다.
A.D 7-8세기에는 지중해 연안의 다른 도시들과 같이 에베소 지방도 아랍인들의 침략이 시작되고, A.D. 11세기에는 셀주크 투르크족이 점령하고 A.D.1390년에는 오스만 제국이 건설되었다. 지금은 터키의 영토이다.
(3) 성경 본문
바울의 3차 전도여행은 에베소에 많은 강조를 둔다. 그런데 바울이 에베소에 도착하기 전에 어떤 한 종류의 기독교가 에베소에 이미 소개되었었다(행 18:24-28). 알렉산드리아에서 난 아볼로라는 유대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데에 열심이었지만 오직 요한의 세례만 알고 있었을 뿐이다. 따라서 브리스길라와 아굴라가 복음의 원리를 더 좋은 방법으로 풀어 설명해 주었다. 아볼로가 에베소에 오기 전에 기독교의 진리를 어느 정도라도 알고 있었다는 사실은 세례 요한의 영향과 예수님의 메시지가 초기에 알렉산드리아까지 미칠 만큼 널리 펴져 있었다는 것을 증명해 준다. 아볼로는 알렉산드리아에서 예수에 대해 배웠고 그 후 에베소에 와서 약간 불완전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한 것이다. 바울은 그들이 성령에 대해 아는지 물어 보았다. 그들은 성령과 그의 능력에 대해 알고 있지 못했다. 그들은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바울은 그들에게 안수하고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므로 그들은 방언을 말하고 예언을 하게 되었다(행 19;5-7). 바울의 말씀선포를 듣고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을 때에 비로소 기독교인이 된 것이다.
(행 19:8) 바울이 회당에 들어가 석 달 동안 담대히 하나님 나라에 관하여 강론하며 권면하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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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에베소의 유대인 회당에서, “3개월 동안” 사도 바울이 한 회당에서 3개월 동안 강론하며 권면한 것은 다른 어느 회당에서보다 가장 긴 기간들 중 하나였다.
바울은 어느 때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복음을 담대히 전파했다. 바울이 고린도에서는 “예수는 그리스도라”(행 18:5)고 증거하고, 에베소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가르치며 설교하였다.
(행 19:9~10) 어떤 사람들은 마음이 굳어 순종하지 않고 무리 앞에서 이 도를 비방하거늘 바울이 그들을 떠나 제자들을 따로 세우고 두란노 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니라 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
바울은 유대인들의 회당을 떠나 믿는 제자들을 따로 세웠다. 이들이 에베소교회의 개척자들이 되었다. 바울은 이들 대상으로 두란노서원에서 날마다 강론하였다. 두란노서원의 강론은 2년 동안이나 매일 지속되었다.
두란노서원에서는 갈라디아서에서 제시한 ‘이신칭의’의 복음을 근본으로 바울의 모든 신학적인 진리가 체계적으로 모두 강론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중요한 것은 두란노서원에서 바울이 2년 동안이나 누구를 대상으로 무슨 내용을 날마다 강론했느냐는 점이다. 누가는 “이 같이 두 해 동안을 하매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행 19:10)고 기록하고 있다.
바울이 2년 동안 가르치며 설교한 결과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복음을 받게 되었고,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들 곧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골로새, 히에라폴리스, 드로아 등지의 여러 교회들이 세워지게 되었다.
(행 19:11)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12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 |
바울의 말씀 사역은 능력의 사역으로 이어졌다. 전능하신 하나님은 바울의 손을 통하여 놀라운 이적을 행하게 하셨다. 그 결과 병자들이 계속 낫고, 심지어는 바울의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병자에게 얹기만 해도 병이 나았다.
(행 19:13~19)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 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며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고 믿은 사람들이 많이 와서 자복하여 행한 일을 알리며 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그 책 값을 계산한즉 은 오만이나 되더라. |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바울이 이적을 행한 것을 모방했다.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바울을 모방하다가 큰 봉변을 당했다. 악령이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에게 “예수도 내가 알고 바울도 내가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행 19:15)라고 반문했다. 그리고 악귀 들린 살마이 두 사람에게 뛰어 올라 그들을 상하므로 그들이 벗은 몸으로 집에서 도망했다. 에베소에 사는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 다 이 일을 알고 두려워하여 주 예수의 이름을 높이며, 많은 마술사들은 그들의 마술책들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들 앞에서 불살랐는데 그 책값을 계산한 즉 약 은 5만량이나 되었다(행 19:17,19).
(행 19:23~41) 그 때쯤 되어 이 도로 말미암아 적지 않은 소동이 있었으니 즉 데메드리오라 하는 어떤 은장색이 은으로 아데미의 신상 모형을 만들어 직공들에게 적지 않은 벌이를 하게 하더니 그가 그 직공들과 그러한 영업하는 자들을 모아 이르되 여러분도 알거니와 우리의 풍족한 생활이 이 생업에 있는데 이 바울이 에베소뿐 아니라 거의 전 아시아를 통하여 수많은 사람을 권유하여 말하되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들은 신이 아니라 하니 이는 그대들도 보고 들은 것이라 우리의 이 영업이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신전도 무시당하게 되고 온 아시아와 천하가 위하는 그의 위엄도 떨어질까 하노라 하더라.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분노가 가득하여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니 온 시내가 요란하여 바울과 같이 다니는 마게도냐 사람 가이오와 아리스다고를 붙들어 일제히 연극장으로 달려 들어가는지라 바울이 백성 가운데로 들어가고자 하나 제자들이 말리고 또 아시아 관리 중에 바울의 친구 된 어떤 이들이 그에게 통지하여 연극장에 들어가지 말라 권하더라 사람들이 외쳐 어떤 이는 이런 말을, 어떤 이는 저런 말을 하니 모인 무리가 분란하여 태반이나 어찌하여 모였는지 알지 못 하더라. 유대인들이 무리 가운데서 알렉산더를 권하여 앞으로 밀어내니 알렉산더가 손짓하며 백성에게 변명하려 하나 그들은 그가 유대인인 줄 알고 다 한 소리로 외쳐 이르되 크다 에베소 사람의 아데미여 하기를 두 시간이나 하더니 서기장이 무리를 진정시키고 이르되 에베소 사람들아 에베소 시가 큰 아데미와 제우스에게서 내려온 우상의 신전지기가 된 줄을 누가 알지 못하겠느냐 이 일이 그렇지 않다 할 수 없으니 너희가 가만히 있어서 무엇이든지 경솔히 아니하여야 하리라 신전의 물건을 도둑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비방하지도 아니한 이 사람들을 너희가 붙잡아 왔으니 만일 데메드리오와 그와 함께 있는 직공들이 누구에게 고발할 것이 있으면 재판 날도 있고 총독들도 있으니 피차 고소할 것이요 만일 그 외에 무엇을 원하면 정식으로 민회에서 결정 할지라. 오늘 아무 까닭도 없는 이 일에 우리가 소요 사건으로 책망 받을 위험이 있고 우리는 이 불법 집회에 관하여 보고할 자료가 없다 하고 이에 그 모임을 흩어지게 하니라. |
에베소에서의 소동은 바울의 교훈을 반대하는 은장색 데메드리오가 자기 직공들과 동일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선동하여 일으킨 소동이다. 데메드리오는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파는 은장색 업자였다. 데메드리오는 자기 직공들, 은장색 업자들, 아데미 신상을 섬기는 자들에게 연설하기를, 지금까지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판매하여 수입을 올리고 풍족한 생활을 하여 왔다는 것과 바울은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하므로 어떤 사람들은 아데미 신과 신상을 부정적으로 생각하게 하였다는 것, 그 결과 아데미 신전과 신상의 위엄도가 추락되고 무시당하게 되었다는 것, 은장색 업이 천하게 되어, 사업이 잘 안 된다는 것 등이다. 데메드리오의 연설은 우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직공들, 우상 섬기는 자들, 우매한 사람들을 충동하고 선동하기에 충분하였다. 그들은 극장에서 무려 2시간 동안이나 시위를 벌였다.
바울은 극장에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제자들이 말리고 또 아시아 관리들 중 바울의 친구들도 바울에게 메시지를 보내어 극장에 들어가지 말 것을 적극 권하였다(행 19:30-31).
서기장은 무리들을 진정시킨 후 연설하기 시작하였다(행 19:35-40). 그는 지혜롭게 중도입장을 취하였다. 서기장은 데메드리오와 주동자들과 무리들이 외친 아데미 신앙의 기원에 대하여 인정하였다. 서기장은 위협을 받는 신자들도 감안하여 아무 잘못이 없는 자들에게 경솔하고 성급한 행동을 하지 말 것을 권고했다. 데메드리오와 주동자들이 고발할 일이 있으면 합법적인 절차를 따라 진행할 것을 권고했다. 서기장은 불법집회, 소요사태는 절대로 허용하지 않음을 경고했다. 로마제국 당시 불법집회나 소요사태는 엄히 진압하였다. 에베소에서 데메드리오가 주동한 소동이 끝났을 때, 바울은 제자들을 권면한 후에 북쪽 마게도니아 지방과 그리스 남쪽 지방으로 다니며 3개월 동안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유대인들이 바울을 해하려고 음모하므로 무교절 후에 곧 배로 드로아로 떠났다.
(4) 서신서 고린도 전·후서 기록
① 배경과 목적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 여행 시, 1년 6개월 동안이나 상주하면서 많은 노력을 들여서 개척한 아가야 지역의 중심교회였다. 고린도교회는 바울이 직접 개척했고, 아볼로를 보내어 목회하도록 했으며(행 19:1), 디도와 디모데 그리고 에라스도, 그리스보, 가이오, 스데바나 등 바울의 동역자들이 여러 모양으로 활동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는 서신은 신약성경에 수록된 고린도전서(두 번째 편지)와 후서(네 번째 편지)뿐이다. 나머지는 유실되어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 않다. 첫째와 둘째와 셋째 편지는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기간(52~55년) 중에 써 보낸 편지이고, 넷째와 다섯째는 바울이 헬라지역 순방 기간(55~57년)중에 써 보낸 편지이다.
㉠ 고린도전서
바울은 에베소에서 2년 9개월 동안 복음을 전하면서 A.D.55년경 보냈다.
고린도전서를 써 보낸 목적은 먼저 보낸 첫 번째 편지(A)에 대한 오해를 바로 잡고, 고린도교회 내부의 분쟁에 대하여 충고하고, 교회의 무질서와 도덕적인 타락 그리고 신학적인 혼란에 대한 해답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바울에게 보고된 고린도 교회의 다른 잘못은 공적 예배를 남용하고, 잘못된 자만심을 가지고 있으며, 부활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고 또한 실체로 음란한 행위가 교회 내에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문제들을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쓰면서 자세하게 다루어 고린도 교회에 전한다.
㉡ 고린도후서
바울은 에베소에서 A.D. 55년 말경 헬라지역에 대한 순회 선교 여행을 떠나기 직전 바울을 끈질기게 괴롭힌 난제는 여전히 고린도 교회 문제였으나, 디도로부터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이 근심하며 회개하고 또한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소식을 전해 듣고, 기쁜 마음으로 화해와 위로의 뜻을 전하고 싶었던 바울은 다시 고린도교회에 고린도후서를 써 보냈다.
이 편지의 주제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바울 자신의 자기변호라고 할 수 있다. 개인적인 이해관계나 자존심의 문제로서가 아니라 바울 자신의 사도권이 확립되지 않고서는 이제까지 자신이 전한 복음의 정당성이 인정될 수 없기 때문에, 자신의 사도권을 확증하고자 했던 것이다.
(5) 서신서 갈라디아서 기록
① 배경과 목적
갈라디아 지역에 대한 선교 여행을 마치고 복귀하여 안디옥에서 지내던 기간 중에 그들이 선교했던 남 갈라디아 지역의 교회들로부터 ‘다른 복음’(갈 1:6), 즉 할례와 율법의 준수를 요구하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훼방으로 인한 동요와 혼란이 일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이들의 가르침으로 인해서 안디옥교회에서는 할례와 율법을 가르치는 율법주의자들과 ‘이신칭의’ 복음을 전한 바울 및 바나바로 대표되는 복음주의자들로 대립되는 두 진영 사이에 적지 않은 변론이 일어났다(행 15:2). 갈라디아서는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다른 복음’의 부당성과 자신과 바나바가 전한 ‘이신칭의’ 복음의 정당성을 변증하기 위해서 작성된 전투적인 변증서신이다.
① 구성과 내용
바울은 ‘다른 복음’을 전하는 유대 율법주의자들의 가르침에 대항하여 자신의 ‘이신칭의’ 복음을 변증(2:15-5:12)하기 전에 자신의 사도직을 변호한다(1:6-2:14). 이어서 바울은 ‘이신칭의’ 복음을 변증하고 있다.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이신칭의’ 복음의 신학적 함축들을 요약하여 제시하고(2:15-21), 아브라함의 가족을 혈통적인 자손으로 정의한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해석을 거부하고, 오직 믿음으로 태어난 약속의 자녀들이 참된 아브라함의 가족이라고 급진적으로 재정의한다(3:1-4:31). 신학적인 변증의 논리적인 귀렬로 그리스도인의 참된 자유의 삶을 제시한다. 이는 율법에 매여 사는 것이 아니라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성령을 따라 사는 것임을 밝힌다(5:13-24).
에베소 원형극장(바울이 설교하였던 곳)
에베소 도미티안 신전 계단(발굴중)
아데미 신전터(요한교회에서 본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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