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명연구
에베소(ef'-es-os : 엡헤소스)는 헬라어로 ‘인내’라는 뜻이다.
최초의 지리학자인 스트라보에 의하면 에베소란 말은 이 지역에서 가장 먼저 활동한 것으로 추측되는 아마존 사람들의 여왕이름인 ‘아빠소스’에서 따왔다고 한다. 아빠소스 ‘꿀벌’ 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현재 지명은 셀축(Selçuk)이다.
(2) 역사 배경
에베소는 B.C. 1400년경 아마존 족속들에 의하여 처음 시작되었다. 그러나 에베소를 발전시킨 것은 아테네의 왕자였던 안드로클루스(Androclus)였다. 그에 의해 B.C. 1000년경 이 지역에 이오니아인들이 들어오고 에베소는 발전을 하게 되었다.
에베소 전설에 의하면 안드로클루스가 도시를 세우기 위해서 관습에 따라 델피에서 “생선과 산돼지와 불이 함께 만나는 곳에 도시를 세우라” 는 신탁을 받았는데, 에베소 지역에 이르러 부하들과 생선을 구워먹던 중 불똥이 튀어 코레소스 산에 불이 나고 말았다. 이때 숲에서 산돼지가 달려 나왔는데 그것을 보고 이곳이 바로 신이 원하는 장소라고 생각을 하고 그곳에 도시를 세우고 산돼지 상을 건립하였다.
소아시아 지역의 해변은 리아스식으로 항구가 들어서기 좋은 조건이다. 이 해안으로 흘러들어오는 많은 강들이 있어서 내륙으로 통하고, 이 강들에 의하여 형성된 계곡은 항구와 연계되어 사람들이 왕래한 통로가 되었고 이 통로를 따라 도시들이 세워졌다.
에베소에 흐르는 강은 고대에 카이스터(Cayster)강으로 불렸던 북 멘 데레스 ( K. Men Deres) 강에는 밀레도 (Miletus)가 있다. 에베소는 이런 강의 계곡을 통하여 다른 도시들과 연결되어 있고, 풍부한 물과 비옥한 토지와 바다, 그리고 카이스터 강에 의하여 자연스럽게 형성된 천연항구 등으로 거대도시로 발전하였다.
그러나 카이스터 강의 천연항구는 상류에서 흘러온 진흙으로 점차 메워졌다. 항구가 그 기능을 상실할 것을 우려한 당시의 이 지역 지배자 버가모의 앗탈루스 필라텔푸스 (Attalus Philadelphus)왕은 항구의 입구를 좁게 하면 유속이 빨라져 항구가 패여 나가 더 깊어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고 방파제를 건설하였으나 반대의 현상이 일어나 오히려 퇴적작용이 더 빨라져 항구가 더욱 좁아지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결국 오늘날에는 현재의 해변으로부터 6-8km 떨어진 내륙 습지대에서 에베소 도시의 흔적들이 발견되고 있다.
에베소에서는 안드로쿠스에 의하여 도시가 형성되기 이전부터 아르테미스(Artemis)여신을 숭배하였다. 바울도 에베소에서 전도할 때 이 여신을 숭배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고발당하였다.(행 19장). 에베소에는 거대한 아르테미스 신전이 건설되었는데 B.C. 356년 알렉산더가 태어나던 날 페르시아가 이 지역을 정복하면서 불을 질렀는데 그 불길이 장관이었다고 한다.
B.C. 334년에 알렉산더는 이곳의 페르시아인들을 물리치고 에베소를 차지하였는데 시민들은 건축가 디노크라테스(Dinocrates)를 중심으로 불타버린 신전을 재건하였다.
에베소 사람들은 아토스 산에 알렉산더의 입상을 세웠는데 비용을 지불하겠다는 알렉산더의 제안을 “신이 신에게 제물을 바칠 수는 없다”는 아첨의 말로 거절하였다.
알렉산더 사후에 에베소를 차지한 그이 4대 장군 중 한명이었던 리시마쿠스 (Lysimachus)는 저지대의 거주자들을 고지대로 이주시키면서 에베소를 재건하였다. 그러나 리스마쿠스는 셀레우코스 1세에게 패하여 살해되고 에베소는 셀레우코스 왕조 지배에 들어가게 되었다.
B.C. 133년 버가모의 마지막 통치자 앗탈루스 3세가 죽으면서 통치권을 로마에 넘겼고, 이후 몇차례의 반란이 일어났으나 B.C. 64년 이후 완전하게 로마에 속하게 되었다. 이후로도 에베소는 아시아의 요충지로서 2세기 동안 화려한 영광을 누렸다.
에베소가 폐허가 된 것은 지진과 질병 때문이었다. 지진으로 도시가 파괴되고 게다가 항만에 토사가 쌓이면서 습지가 되고 여기에 모기가 생겨 말라리아가 유행하여 사람들은 에베소를 떠났다. 12세기에 회교도인 셀주크 투르크인들이 쳐들어오면서 이곳의 기독교인들은 정든 곳을 버리고 이주해야 했다. 이후 도시의 유적들은 보존되었으나 많은 기독교 유적들은 파괴되고 사라졌으며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마리아의 집, 누가의 무덤 , 성 요한 교회와 무덤 등이 있다.
에베소 이름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B.C. 13세기경의 헷족속의 비문에 아파사스로 불렸던 도시가 바로 이 지역이다. 이 지역에는 아나톨리안이 B.C. 10세기 경 부터 정착하기 시작하였다. 에베소는 교통의 요지이며, 수출 무역항이며, 상업도시이며, 로마제국의 소아시아 지방의 수도였다.
신약시대 당시 에베소는 인구 약 250,000명이 사는 세계에서 4번째 큰 도시(로마·알렉산드리아·시리아의 안디옥 다음으로)였다.
A.D.431년에는 제3차 공의회가 에베소에서 개최되었다. 제1차공의회는 A.D.325년 니케아에서, 제2차 공의회는 콘스탄티노플에서 개최되었다.
A.D 7-8세기에는 지중해 연안의 다른 도시들과 같이 에베소 지방도 아랍인들의 침략이 시작되고, A.D. 11세기에는 셀주크 투르크족이 점령하고 A.D.1390년에는 오스만 제국이 건설되었다. 지금은 터키의 영토이다.
(3) 성경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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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 일행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소아시아에 도착하여 소아시아의 중심도시인 에베소에 들렸다. 함께 간 일행은 에베소에 머물게 한 다음, 바울은 곧바로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갔다. 거기서 복음을 증거하며 유대인들과 변론하였다. 바울은 에베소에 잠시 머물다가 곧 작별을 고했다. 에베소 사람들에게 “만일 하나님의 뜻이라면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 (행 18:21)는 약속을 남기고, 예루살렘으로 귀환하는 배에 올랐다. 바울과 동행했던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는 에베소에 남았다.
에베소 사도요한 순교기념교회
에베소& 도서관&대극장
에베소종교회의 장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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