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명 연구
베뢰아(Bevroia : ber'-oy-ah : 베로이아)는 ‘저편’, ‘다른 쪽’(pevran : per'-an : 페란)라는 단어에서 파생어의 방언이다. 현재 지명은 베리아(Verria)이다
(2) 역사적 배경
베뢰아는 데살로니가에서 남서쪽 방향으로 약 80km(50mile) 떨어진 한 작은 도시로 해안에서 약 40km 내륙에 있다. 지금은 약 6천 명이 살고 있는 베리아(Verria)이다. 베뢰아에도 데살로니가와 같이 신석기시대부터 사람들이 살기 시작하였다고 여겨진다. 당시 베뢰아는 베르미온 산(Mt. Vermion) 동쪽 기슭에 위치한(알렉산더 대제가 태어난) 펠라(Pella) 근처이다.
B.C. 700년경 마게도니아인들이 정착하였으며, B.C. 168년 로마제국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었고 마게도니아의 4행정구역 중 제3구역의 수도가 되었다.
A.D. 1204년 에피루스(Epirus)의 데스포타테(Despotate)와 니카이아(Nikaia)제국이, 1387년에는 오토만(Ottomans)제국이, 그 후에는 발칸전쟁(Balkan War)후 1912년 그리스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베뢰아는 역사적으로나 정치적으로도 그리 중요한 위치는 아니었다.
베뢰아에는 Vergina 유적지, Dion에 있는 고대 공중목욕탕, 사도 바울의 기념비 등이 있으며, 유대인의 회당이 있었다.
(3) 성경본문
(행 17:10) 밤에 형제들이 곧 바울과 실라를 베뢰아로 보내니 그들이 이르러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니라. |
|
데살로니가에 있는 믿음의 형제들이 바울과 실라를 밤중에 베뢰아로 피신시켜다. 왜냐하면 유대주의자들이 불량배들을 동원하여 바울과 실라를 해치고자 했기 때문이다.
바울과 실라는 베뢰아에 도착한 직후 유대인의 회당에 들어가 또 동일한 복음을 전하였다.
(행 17:11-14) 베뢰아에 있는 사람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들보다 더 너그러워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그 중에 믿는 사람이 많고 또 헬라의 귀부인과 남자가 적지 아니하나 데살로니가에 있는 유대인들은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베뢰아에서도 전하는 줄을 알고 거기도 가서 무리를 움직여 소동하게 하거늘 형제들이 곧 바울을 내보내어 바다까지 가게 하되 실라와 디모데는 아직 거기 머물더라. |
바울은 베뢰아에서도 복음을 전하므로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날마다 성경 말씀을 상고하며 부흥되었다. 베뢰아 사람들이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라는 것은 비교급으로서 데살로니가 사람들도 신사적이고 고상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인데 베뢰아 사람들은 그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신사적이고 더 고상하다는 뜻이다. 베뢰아 사람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보다 더 높은 교육과 문화로 인하여 더 신사적이었다.
칼빈은 누가가 데살로니가 사람들의 고상함을 언급하게 된 이유 세 가지를 든다. 첫째,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가 힘드는데 데살로니가에 있는 고상한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된 사실을 통해 하나님의 성령의 놀랄만한 사역을 증거 하기 위해서였다. 둘째, 그리스도의 은혜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에게 베풀어진다는 사실을 증거 하기 위해서였다. 셋째, 비교적 짧은 시간에 데살로니가에서 그리스도의 왕국이 확장되게 된 이유를 지적하기 위해서였다. 즉 고상한 사람들이 먼저 복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영향으로 보통계층의 삶들은 쉽게 복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칼빈의 조직적인 설명에도 불구하고 본문을 문맥에 비추어 생각할 때 본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 대한 칭찬이 아니라 베뢰아 사람들에 대한 칭찬임이 확실하다.
그러나 데살로니가 유대인들이 베뢰아까지 바울을 다라와 소동을 일으켰다. 따라서 기독교인들은 바울을 아덴까지 선편으로 호송했다(행 17;14). 그러나 실라와 디모데는 베뢰아에 남아 있었다. 아덴에 도착하자 바울은 자기를 호송한 사람들에게 베뢰아에 돌아가면 실라와 디모데를 속히 아덴으로 보내라고 부탁했다(행 17:15).
베뢰아 전도를 위해 바울도착 기념물 (1)
베뢰아 전도를 위해 바울도착 기념물 (2)
베뢰아 시내 전경
댓글0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