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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 수리아와 길리기아
박진숙 2016-03-28 추천 2 댓글 0 조회 7708

2) 수리아와 길리기아

 

(1) 지명연구

 

수리아

   수리아(Suriva : soo-ree'-ah : 쉬리아)는 팔레스틴에 북쪽에 인접한 광역적지역의 지명이다. 그 중심에 수리아 안디옥이 있다.

 

길리기아

 

   길리기아(Kilikiva : kil-ik-ee'-ah : 킬리키아)돌을 굴리다라는 뜻을 가진 광역지역의 이름이다. 힛타이트인에게는 기주와드나(Kizzwatha), 앗수르인에게는 갈락구(Khalakku)로 알려졌던 땅인데, 여기서 희랍 이름 길리기아(Kilikiva)가 나왔다.

 

(2) 역사적 배경

 

수리아

 

   히브리어 구약성경에 `수리아'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구약성경의 `수리아'`수리아 사람'은 다 `히브리어의 사람' 또는 `아람사람'이다. 그러나 이 말은 그대로 이해하여 언제든지 `수리아', `아람' 또는 `수리아 사람', `아람 사람'이라고 하면 구약성경 전체를 볼 때 문제는 남는다. , `수리아'라고 하는 경우, `아람 사람'과의 관련에서 역사상 특정하게 한정된 때와 장소의 것으로 이해한다면 최근의 고고학적 발견이 구약성경에 준 의미와 의의에 적당치 않다. 그래서 `수리아' 또는 `아람'을 시간·공간적으로 더 넓게 보는 의미에서 `수리아'라는 땅을 유브라데 강, 소아시아, 아라비아 사막, 그리고 베니게, 동지중해 등으로 연결된 지역으로 이해한다면 그 안에는 갈그미스, 알레포(Aleppo), 알랄락(Alalakh), 우가릿(Ugarit), 두로, 시돈, 하맛, 가데스, 다메섹 등이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들 땅은 모두 대상로, 혹은 해외 무역항으로서, 애굽 또는 메소보다미아, 소아시아, 기타 에게 해를 잇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성읍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여러 가지 발굴 문서에 의하면, 북 수리아의 연안 지방에서는 옛 부터 연()이 산출되고, 이것이 앗수르의 가바도기아에 있어서의 상업 식민지의 중요한 거래 품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또 알레포 부근에는 청동기 시대의 중요한 생산품인 동()을 산출하는 동산(銅山)이 있고, 또 올리브의 산지이기도 하고, 서수리아는 포도의 산지로서도 알려져 있다. 갈그미스는 메소보다미아와의 통상 요로로서, 옛 바벨론 시대에는 말()의 거래 중심지로서 유명하며, 포도주의 수출이 있었다는 것이 마리 문서에 나온다. 따라서 이 수리아는 옛 부터 문화의 교류지 내지는 상업 무역에서 중요한 위치를 지니고 있었으며, 또 정치세력의 쟁점지로도 부각되어 있는 땅이다. 애굽은 일찍부터 수리아에 세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흥 세력이었던 힛타이트와 이 땅을 둘러싸고 패권을 다툰 적이 있다. 북수리아의 연안 라스 사므라(Ras Shamra) 출토의 우가릿 왕국의 왕실 문서(BC 14, 13세기)는 이들 수리아의 도시가 서로 정치적, 경제적으로 이 우가릿 왕국과 직접 간접으로 굳게 결합되어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를테면 이 수리아는 당시의(아마르나 시대를 중심한) 세계 모든 지역과 직접간접으로 교류를 가지고 있었던 곳이다.

 

 

길리기아

 

   소아시아의 동남부 연안 지대이다. 동쪽은 아마누스 산맥(Amanus range),북쪽과 서쪽은 타우로스 산맥(Taurus Mts.), 남쪽은 지중해에 의해 경계 지어져 있다. 서쪽의 산악 지대는 길리기아 드라기아(Cilicia Tracheia, 기복이 많은 길리기아), 동쪽 비옥한 평원 지대는 길리기아 베디아스(Cilicia Pedias, 낮은 길리기아)라 불리었다. 힛타이트인에게는 기주와드나(Kizzwatha),

  ​앗수르인에게는 갈락구(Khalakku)로 알려졌던 땅인데, 여기서 희랍 이름 길리기아(Kilikiva)가 나왔다.

  앗수르인은 이 국토를 또 `가웨'(Qawe)라고도 불렀는데, 그것은 히브리어의 (hwEq ]: qeweh), 신바벨론어의 Khuwe에 해당된다. 외전 유디드서(Book of Judith) 2:21, 25에는 홀로벨네스(Holofernes)가 다우로스 산맥에 있는 길리기아 산지에서 싸웠다고 하는데, 그것은 `길리기아의 협문(峽門)'으로서 알려져 있는 군사적으로 중요한 고개이다. 길리기아는 다리오 제국의 제 4주를 이루고 있었으나, 헬레니즘 시대에는 셀레우코스(Seleucus) 왕조에 속해 있었다(마카비 111:14,24:36). BC 57년 로마의 속주로 되고, 바울의 출생지인 다소를 수도로 하였다(21:39,22:4,23:34). 길리기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디이아스포라(Diaspora, 유대인으로서 팔레스틴 이외의 땅에 이주한 자나 또는 그 거주지)의 유대인은 예루살렘에 회당을 가지고 있었다(6:9). 예루살렘 교회에서 회의가 있던 때는 길리기아에 신자가 있었는데(15:23), 바울의 전도에 의해 회심한 사람들이었다(9:30,1:21). 바울은 그들을 제 2차 전도여행 때에도 방문하였다(9:41).

 

 

(3) 성경 본문

 

 (15:41) 수리아와 길리기아로 다니며 교회들을 견고하게 하니라.

 


바울과 실라는 안디옥에서 서북방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을 육로로 여행했다(15:41). 이 지방을 지나면서 그들은 바울이 전에 안디옥에서 목회할 때 복음을 전했던 교회들을 방문했다.

 

 

   

수리아와 길리기아 광역지역 지도

 

길리기아 다소 시내 재래시장

 

길리기아 다소 시내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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