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라. (눅23장22-31절)
오늘은 예수님의 행적의 마지막 날에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지고 올라갈 때 있었던 일에서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만찬을 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시고 난 후에 제자들과 함께 있을 때에 잡히시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 앞에서 심문을 당하시고 공회의 사람들에게 모욕을 당하십니다.
총독 본디오 빌라도에게 넘겨져 대면하여 심문을 받으시고, 본봉왕 헤롯에게 넘겨지어 심문을 받습니다.
다시 빌라도에게 보내어져 그는 죄가 없으신 데에도 사형을 선고를 받게 됩니다.
빌라도의 명에 의하여 로마 군사들에 의하여 갈보리산 언덕으로 십자가를 짊어지고 끌려 올라가시어 십자기에 못 밖히어 죽으십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걸어가던 마지막 길을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고 하고 이 길을 슬픔의 길, 고난의 길이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짊어지고 오르신 길이라고 하여 십자가의 길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걸었던 이 십자가의 길은 예수님에게는 고난의 길이었지만 우리들에게는 구원의 길, 생명의 길이 되었습니다.
이 생명의 길은 구원받은 성도들은 반드시 걸어야 하는 십자가의 길인 것 입니다.
오늘날 사람들마다 제 마다의 모양은 달라도 이 생명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불신자들은 자기의 안녕을 위하여 자신의 쾌락과 안위의 인생길 만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는다고 하는 이들도 자가의 유익을 위하여 요령을 부리거나 사람들의 이목과 눈치를 보며 살아가는 신앙인들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은 주님의 길을 따르며 기쁨으로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님 여러분들께서는 어떤 길을 가고 있습니까?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이기에 생명의 길 앞에 어떠한 고난의 길이 가로막을 지라도 인애하고, 뛰어 넘고, 물리치며, 영광에 이르시기를 축원합니다.
1. 십자가를 피하는 길이 있습니다.(눅24-25)
[눅] 23:24 이에 빌라도가 그들이 구하는 대로 하기를 언도하고
[눅] 23:25 그들이 요구하는 자 곧 민란과 살인으로 말미암아 옥에 갇힌 자를 놓아 주고 예수는 넘겨주어 그들의 뜻대로 하게 하니라.
빌라도는 세상이 구하는 대로 끌려가는 길을 선택한 것입니다.
빌라도는 로마 황제가 이스라엘을 통치하라고 보낸 총독입니다.
빌라도 총독은 당시 로마에서 파송한 이스라엘에서 가장 높은 지위가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놓아 주든지 사형의 심판이든지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권한이 있음에도 유대인들의 눈치를 보고 있습니다.
권한을 가지고 있어도 눈치를 보기에 자기의 의지로 그 권한을 잘못 사용한 것입니다.
빌라도 총독은 분명하게 ”그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권한을 잘 못 사용합니다.
세속에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안위를 위하여 얼마든지 십자가를 피할길을 찾습니다.
그것이 지혜라고 생각하고, 그것이 요령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신자들에게는 진리를 따르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는 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자기의 의지와 상관없이 그들이 구하는 대로 판결하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무죄를 확신하였으며 유대인들이 불의하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재판관으로서 마땅히 진리 편에 서서 예수님을 무죄 석방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총독으로서의 사회적 지위와 안전을 잃지 않을까 하는 염려 때문에 불의와 타협하다가 결국 불의에 굴복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장본인으로서 역사의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역사가 유세비우스에 의하면 그는 이 비극의 순간을 잊지 못해 고심하다가 미치광이가 되고 5년 후에 유배당하여 자살했다고 합니다.」
빌라도는 이 생애에서 그 죄에 대한 댓가를 치루었습니다.
오늘 우리들의 삶 속에서 진리에서 벗어나 엇나간 길을 가고 있는 자신을 깨달았을 때, 회개하고, 바른길(진리의 길)로 돌아와야 됩니다.
빌라도는 사람들의 눈치와 체면 때문에 그는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눈치와 체면과 권력에 밀려 잘못된 결정을 하고, 우리는 세상의 눈치와 체면과 유혹에 눈이 돌아가 알면서도 범죄하고,
우리는 세상의 눈치와 체면과 쾌락을 바라며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기를 축복합니다.
예수 믿는 우리들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불 이익을 당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신앙인의 양심에 관한 일들이 있습니다.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희생을 감당하여야 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공동체를 섬기며 주님을 따르려면 물질을 감당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주님을 위하여서라면, 진리의 말씀을 따르는 일에 피하지 않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잠]22:1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
우리는 세상의 안락보다, 행복보다 하늘의 영광을 선택하는 성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마]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주님은 재물이 무조건 나쁜 것이기네 버리라는 것이 아니라
재물보다 하나님을 우선에 두라고 말씀하십니다.
[딤전]6: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딤전]6: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바울은 재물에 관하여 가치있게 사용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하라고 하시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십자가를 피하지 않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르는 길이 있습니다.(26절)
[눅] 23:26 그들이 예수를 끌고 갈 때에 시몬이라는 구레네 사람이 시골에서 오는 것을 붙들어 그에게 십자가를 지워 예수를 따르게 하더라
구레네 시몬은 아프리카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 근처에 '구레네'라는 지역에서 살던 사람입니다. 그는 아마도 흑인이었던 것 같습니다.
피부가 검고 기골이 장대하여 힘 꽤나 쓰게 생겼던 모양입니다.
로마 병사가 많은 사람들을 돌아봤을 때....
그 중에서 힘 꽤나 써 보이는 사람이니까...
"너 이리 나와!" 이렇게 해서 십자가를 지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이 바로 인류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이며 그 십자가가 구원의 십자가요, 구속의 십자가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기쁘게.. 자원하는 마음으로 졌겠습니까?...
1) 시몬이 짊어진 십자가는 그 십자가를 억지로 진 것입니다.
그런데 억지로 졌던 그 십자가가 결국은 그에게 놀라운 축복이 되었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까지 가서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과
그 후 부활 의 예수님을 보면서... 그는 예수님을 확실히 믿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늘 기쁨으로 살고..
언제나 순종하면서 살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도 많습니다.
예수 믿는 것도 힘이 들 때가 있어요... 피곤하고, 좀 쉬고 싶을 어떤 날은....
교회 오기가 너무 싫은 날도 있을 거예요 ...
"아휴! 오늘 하루는 좀 쉬었으면 좋겠다!" 그 런 생각이 들 때가 있을 겁니다.
그러나 억지로라도 와서 나의 자리를 지킬 때 때로는 그 억지로 온 그 날이 더 은혜를 받을 수 있고 하나님께 많은 은혜와 축복을 받는 날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1)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이 구레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분명히 억지로 졌습니다.
그러 나 그는 주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는 순간부터 억세게 재수 없는 사나이가 아니라 억세게 축복 받은 놀라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때로는 억지로 하는 경우도 많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주님을 사랑함에 있어 내가 지어야 할 십자가를 짊어지어야 합니다.
[마]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마]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십자가를 피하는 길은 주님에게 합당하지 않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북 아프리카의 지중해 연안의 한 도시에 구레네 사람이었습니다.
이 시몬은 과거 조상이 종으로 끌려갔었던 사람인지는 알 수 없고, 구레네에서 유월절을 지키러 온 유대인인지, 장사하러 온 유대인인지는 몰라도 이 시몬이 십자가를 억지로 짊어진 이 사건은 그에게 놀라운 은혜가 임하였습니다.
구레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지고 간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자신만 믿은 것이 아니고 온 가족이 다 믿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성경의 기록을 통하여 이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막]15: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마가복음 15 : 21절에 보면 시몬을 초대교회 당시에 잘 믿는 교인 중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바울은
[롬] 16:13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의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그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 루포의 어머니를 향하여 내 어머니와 같다고 한 것은 그녀가 얼마나 독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는지를 짐작케 합니다.
억지로 짊어진 십자가는 온 가족이 구원받게 된 놀라운 은총의 십자가였습니다.
억지로 짊어진 십자가는 자신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과 가문까지도 놀라운 축복을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신약에서 한 가문이 이렇게 전부 성경에 기록된 것은 참으로 영광인 것입니다.
시몬 한 사람 때문에 온 가족이 넘치는 복을 받았습니다.
성경을 읽는 사람들은 두고두고 이 가족들의 이름을 기억하게 됩니다.
주님께서 이 땅에 사역하시다 남은 약자들을 위하여 얼마나 십자가를 짊어집니까?
주님께서 이 땅의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하시다가 남은 일들의 십자가를 얼마나 짊어지십니까?
2)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되 자원하여 따르는 길이 있습니다...
주님께서 모본이 되시었습니다.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빌] 2:7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 2: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께서는 이 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으시기까지 십자가를 짊어지셨으니 우리가 무었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세 단계가 있습니다.
[마]16:24 ..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첫 번째로는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소극적인 면에서 육신의 타락한 본성을 하나님의 말씀앞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내 생각을 버리고, 자존심을 버리고, 하나님의 뜻이라면 나의 유익을 버리고 따르는 길 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는 길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라는 말은 더욱 적극적인 면에서 복음을 위하여 조건없이 나의 희생을 감수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어 주신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을 따를 것이라는 말은 현제적으로 전심전력하여 끊임없이 따라가는 것을 말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골로세서에서 자신이 예수님을 어떻게 따르고 있는 지를 말씀하십니다.
[골] 1:24 나는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는 바울은 예수님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남은 고난을 내 육체에 채우시기를 소망하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3.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며 십자가를 따르는 길이 있습니다. (27-31절)
[눅] 23:27 또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오는지라.
[눅]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이르시되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우리의 신앙이 어느 정도 성장하면 우리는 인생의 길에서 우리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생각하며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리고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겠다는 고백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의 고백을 받으시며 예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실 말씀은 무엇이겠습니까?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왜 무엇 때문에 우리 자녀를 위해 울어야 할까요?
1) 다가오는 고난의 시대 때문에 울라는 것입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최대의 불행이 자녀를 얻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 이어지는
[눅] 23:29 보라 날이 이르면 사람이 말하기를 잉태하지 못하는 이와 해산하지 못한 배와 먹이지 못한 젖이 복이 있다 하리라
왜 일까요? .......... 고난의 시대가 오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는 보통 인류의 문화사적 발전이 보다 나은 내일을 약속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외형적으로 본 보다 편리한 세상이라는 측면에서는 사실일지 모릅니다.
이런 종말론적 가치관의 타락의 원인을
[계] 12: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앞으로의 세상이 훨씬 더 힘들고 어려운 세상임을 안다면 이런 고난의 세상에 살게 될 우리 자녀들을 위해 부모 된 우리가 울어야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2) 불신앙으로 임하는 심판 때문에 울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의 여인들에게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신 더 중요한 이유는 불신앙의 사람들에게 다가올 심판 때문이었습니다.
본문의 30절은 그런 다가올 심판의 두려움을 묘사하는 말씀이었습니다.
[눅] 23: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이런 심판의 예언은 문자 그대로 실현되었습니다.
회개를 거절하고 메시아를 믿지 못한 이스라엘은
결국 AD70년 문자 그대로 예루살렘 성전산이 무너져 내리는 비극을 맞게 되었고
유대 광야 사해 서쪽의 맛사다로 피신했던 남은 자들도 AD72년 결국은 로마의 공략 앞에 그 산이 무너져 내리는 비극을 맞습니다.
이미 눈물을 흘리신 분이시기에 그는 이제 예루살렘의 부모들에게 이제는 당신들이 당신의 자녀들을 위해 울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적 구원하심과 심판하심이 우리들에게 주어지는 믿음의 가장 중요한 기준이 됩니다
그 날 심판의 날엔 성공도 성취도 중요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었느냐 ?, 믿지 않았느냐 ?.... 가 중요할 뿐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여러분의 자녀가 성공하고 잘 나가는 만큼, 그들의 영혼의 구원이나 믿음의 성숙에 관심이 있으십니까?
자녀들의 만사가 잘 나가는 것은 오늘의 삶 가운데에서는 좋은 것이로되 신앙이 거기에 이르지 아니하였다면 이제 우셔야 합니다.
그들이 결국 직면할 메시아를 불신하고, 거절한 대가로 직면할 영원한 심판을 직시하고 우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우리들의 주변의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십니다.
나의 주변을 부지런히 살피어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 슬픔의 길을 걸어 가시면서도 이 부탁을 남기신 것입니다.
“너희와 너희 자녀을 위해 울라“고.
우리의 눈물로써 기도는 헛되지 아니할 것을 언약하시었습니다.
[시] 126: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시] 126: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여러분의 자녀들의 믿음으로 주님 안에 함께하지 않으셨다면 엎드리십시오.
눈물을 뿌리며 울어야 합니다. 땀방울이 핏방을이 되도록 울며 기도하여야 합니다.
지금이야 말로 우리들의 자녀를 위해 눈물을 흘리실 때입니다.
3) 울되 영적 자녀의 영혼을 위하여 울라는 것입니다.
내가 전도한 형제 자매의 영적 자녀들의 영혼을 위하여 울라는 것입니다....
잃어버린 자녀의 영혼을 위하여 울라는 것입니다.....
지옥으로 가는 영혼들을 위하여 울라는 것입니다....
나는 얼마나 십자가를 바라보며 영혼과 복음을 위하여 얼마나 울게 되는 것입니까?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르라. (눅23장 22-31절)
1. 십자가를 피하는 길이 있습니다.(눅24-25)
2. 십자가를 짊어지고 따르는 길이 있습니다.(26절)
3.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며 십자가를 따르는 길이 있습니다. (27-3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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