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요1장1-5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2024년 새해의 시작이요 첫 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인사를 많이 하였을 것입니다.
모두가 복 받기를 바라고 기쁘고 즐거운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한결 같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인사의 말들을 생각하여 보면 믿는 여러분들의 인사의 말과
불신자들의 인사의 말은 확연히 달랐습니다.
신자들과 불신자들의 인사가 이처럼 확연히 다를까요?
인사말의 안에 그들의 정체성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정체성의 차이는 성격이나, 취향이나, 신념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믿는 자와 불신자의 인사가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른 것은 그 사람의 정체성은 자신의 삶안에서 추구하는 가치에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이 가치의 주구대로 그 사람의 언어와 행동양식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신앙역시 가치관에서부터 출발하게 됩니다.
붕신자들에게서 최고의 가치 선은 복 또는 쾌락 그리고 복을 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최고의 가치 선은 신앙이고, 그 대상은 신이신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적 대상이신 하나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그 믿음으로 인하여 구속과 영생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적인 대상은 두 말 할 것 없이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은 삼위일체 하나님에 집중하려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이 하나이신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그런 말씀입니다.
성부 하나님은 세상의 창조, 운행, 보존의 성부 하나님의 일에 대하여
작정과 예정 섭리로 이끄신 분이십니다.
성자 예수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나님의 뜻대로 시행하신 분이시었습니다.
그리고 인간의 구속, 속죄, 인도로 이끄시는 분이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영으로써 하나님의 일을 시행하시는 모든 사역의 시행에 역사하시는 돕는(보혜사) 영이신 것입니다.
이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은 창세전(영원전)에서 영원후까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믿는 신적 대상인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가장 잘 설명하시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예수그리스도의 책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성경은 이스라엘의 역사서와 선지서들로 메시야(구세주)가 오실 것을 예언하시었는데, 그 오실 메시야가 예수 그리스도 였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메시야였고, 오신 메시야로써 구세주이심을 직접적으로 몸소 보이시고, 그 구원사역을 시행하시며 복음의 사역이었습니다.
사복음서 가운데 이 중에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의 관점으로 기록되어있는 공관 복음이라 합니다.
요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메시야 되심을 밝히려는 의도로 쓰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 첫 문장에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으로써 그의 신성을 가지고 세상에 오신 분이라고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말씀에서 하나님을 바로 알고 믿어 의롭다 여김을 얻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1.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1-2절)
[요]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고 요한복음은 시작합니다.
말씀은 lovgo" {log'-os : 로고스} 라는 말로 말, 하나님의 말씀, 정신적 사고의 전달능력의 요소....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의 헬라적 표현으로써 '신의현현'을 의미하였습니다.
신이 보이는 육체로 우리가 보이는 신으로 나타나신 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말씀이라고 하는 이 로고스는 우주 만물 속에 절대 초월자의 신적 근원을 말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신 곳에는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으로 만유를 창조 다스리셨습니다.
로고스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신적 근원을 드러내는 계시를 말하는데, 이 로고스가 예수 그리스도를 지칭하는 것 입니다.
로고스로 이름하는 말씀의 근원은 “예수 그리스도” 이심을 증언하며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예수 그리스도 역시 하나님이시니라....는 말씀입니다.
말씀의 근원이신 로고스가 우리의 신으로 드러나신 분을 믿는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아들로 오시었던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의 믿음의 대상인 예수님에 대하여 많은 이들이 증언하십니다.
예수님은 인간 예수로 태어나서 성령을 받음으로 신성을 입어 그리스도가 되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신이신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어 인간의 몸을 입어 예수 그리스도가 된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성자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 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신성과 인간의 인성을 모두 가지시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독생자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그리스도를 가장 정확한 성경적 표현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영인 신의 성품인 신성과
인간의 인성을 따로 떼어서는 말할 수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2) 말씀인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2절)
[요]1: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이 말씀인 로고스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세상을 함께 창조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이 로고스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로고스는 하나님이시라는 말씀을 전제로 깨달으며
그 말씀을 항상 상고할 때에 말씀 로고스인 예수님을 항상 품고 사는 것이요,
예수님을 항상 품고 사는 것은 하나님과 항상 함께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지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말씀인 이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달으며 항상 품고 살아가는 것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믿음의 증거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그의 말씀을 참으로 믿어 의에 이르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이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과 함께 할 때에 하나님이 함께 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권능과 섭리아래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말씀이 함께 하지 아니하면 하나도 된 것이 없느니라.(3절)
[요]1: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말 합니다.
그런데 불신자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는 추상적 신앙의 대상이니.
인간 중에 성인이어서 존경할 만한 인간 예수로 생각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성경책에 같힌 예수님에 대한 지식의 앎에 그치는 이들은 아무런 영향력도 없고 힘이 없는 종교인에 불과 한 것입니다.
그 말씀을 믿는 자들에게 성령으로 역사하심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의 본문은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만물을 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로고스인 그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으신 것입니다.
성경은 이어 말씀하십니다.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본문의 이 말씀은 “로고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시면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단언합니다.
말씀 즉 로고스 다시 말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고서는 복음 즉 구원의 역사도 없습니다.
우리 신앙인들의 신앙의 입문의 단계(첫 단추)가 오늘 이 말씀(로고스), 그리스도입니다.
신자와 무신론자인가가 이 세상의 창조의 말씀에서 갈립니다.
창세기 1장1절에 무어라고 기록 되어 있습니까?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믿으시면> <아멘>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믿으십니까?>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
만유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신 분임을 하나님이십니다.<믿으시면 아멘>
창조주 하나님을 믿는 자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을 수 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구원을 받아 영생에 이르는 모든 여정이 말씀(로고스) 예수 그리스도로 만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허락하시는 줄로 믿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이 말씀,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는 아무것도 없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우리의 신앙입니다.<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든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없으면 모든 것이 허사여 없으니 하나님을 말씀으로 모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시어 하나님의 역사를 누리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3. 생명이 함께 있는 자는 사람들의 빛이라.(4절)
[요]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1)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이라는 의미는 zwhv {dzo-ay' : 조에} '생명' 살아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그를 모신자들은 그 생명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는 "말씀" 되신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속한 완전한 생명을 말 합니다.
예수를 믿어 마음에 모신 자들은 영생하는 생명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생명을 얻은 이들은 빛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이유는 “조에”라는 말은 신약성경(요14:6)에서 영생이라는 뜻으로도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 “조예” 라는 영생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 만이 있습니다.
[요]3:35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사 만물을 다 그의 손에 주셨으니
[요]3:36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러므로 우리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들에게는 단순히 살아있는 생명의 정도가 아니라 영생으로 나아가는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그리스도를 믿으십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었습니까?....<아멘 입니까?>
그러면 우리는 우리 안에 “조예” “구원받아 영생”을 얻은 이들인 줄을 믿습니다.
사도요한은 말합니다.
우리에게 있는 <조예> 즉 생명은 영생이고 이 영생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 합니다.
이 생명의 빛은 성령을 말하고 성령의 충만함은 생명의 빛이 충만한 사람인 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2) 생명의 빛을 받은 자여 어두움을 비추라(5절)
[요]1:5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①그 생명은 그리스도의 빛으로 우리의 내면을 비추게 됩니다.
말씀을 믿음으로부터 시작되는 생명의 빛을 내면을 비추시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죄악을 비추어 회개하여 어두움을 물리치어야 합니다.
어두움이 물러가야 생명의 빛을 더욱 영롱하게 발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를 세례요한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마]3:8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회개의 합당한 열매를 맺을 때에 비로소 생명의 빛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에게 들어 온 생명 자체가 빛이고 그 빛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어두움에 있지 아니한다고 말 합니다.
빛 가운데 있는 이들은 더 이상 어두움에 있지 않습니다.
빛 가운데 있는 이들은 더 이상 실족하여 넘어지지 않습니다.
빛 가운데 있는 이들은 더 이상 멸망의 길을 가지 않습니다.
[시]1:1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시]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도다.
[시]1:3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생명이 있는 영생이 있는 이들은 빛에 거하는 자들의 모습들 입니다.
이제 더 이상 어두움에서 있지 아니한 빛의 자녀가 되신 것을 예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안에 빛을 모신 자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는 자들입니다.
생명의 빛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누리시기를 축원 합니다.
② 빛이 비추이는 데도 어둠의 사람들은 깨닫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당시의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는 그들을 말합니다.
빛의 자녀가 아닌 어두움에 있는 이들은 다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요]8:14 나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거니와 너희는 내가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 것을 알지 못하느니라.
[요]8:15 너희는 육체를 따라 판단하나 나는 아무도 판단하지 아니하노라.
그들은 육체를 따라 판단하는 이들은 빛을 비추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들은 육체를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주변에는 빛이 어둠을 비추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들에게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세례요한이 이를 증거하였습니다.(6-10절)
[요]1:6 하나님께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요한이라.
빛의 근원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신 요한은 영롱한 빛을 증언합니다.
[요]1:7 그가 증언하러 왔으니 곧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믿게 하려 함이라.
[요]1:8 그는 이 빛이 아니요 이 빛에 대하여 증언하러 온 자라.
예수님은 바로 이 빛으로 오시었고 빛의 증인으로 오시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 하십니다.
먼저 요한이 증언하였던 빛으로 오신 예수께서 빛을 비추되
깨닫지 못한 이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요]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추는 빛이 있었나니
[요]1: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요]1: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이 땅에 빛이 왔음에도 많은 자들이 빛을 받아들이지 아니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제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일은 우리에게 맡겨졌습니다.
[요]8:12 예수께서 또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우리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면 생명이 함께하고 그 생명의 빛을 발하게 됩니다.
예수를 증언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먼저 나에게 그리고 다른 불신자들에게 빛을 발하여 그리스도를 증언 하게 됩니다.
복음을 증언하는 사명을 가지어야 한다고도 말하지만
오늘의 말씀에서는 생명의 빛을 얻은 자들은 그 빛(복음)이 발하여지는 것입니다.
먼저 영생의 빛을 많은 이들에게 비추어 영생의 빛 가운데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영생의 빛을 가지고 함께 하여 어두움에 있는 그들에게 비추어 지면 그 영생의 빛이 그에게로 들어가고 빛이 들어가면 어두움이 물러가고,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밝히어 주실 것입니다.
어두움이 물러간 그들 즉 빛으로 밝혀진 그들은 영생의 빛이 밝혀질 것입니다.
기대하고 빛을 밝히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4. 영접하여 함께 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라.(12-13절)
[요]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신앙은 주되신 하나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마귀를 영접하여 마귀와 함께하면 마귀의 자녀가 될 것이며, 우상을 섬기는 자들입니다.
주 예수님을 영접하여 주님과 함께 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영접하면 하나님의 자녀일진데, 하나님의 자녀는 또 다른 하나님의 은혜가 있습니다.
[요]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부터 난 자들이니라.
이 땅에 있는 모든 피조물들은 혈통(유전자)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나무로 만든 책상조차도 어떤 나무로 만들었는지가 아주 중요합니다.
예를 들어 벼락 맞은 마무로 만든 고목나무 탁자는 상상할 수 없는 가격에 거래 됩니다.
진돗개도 혈통이 좋으면 값비싼 가치를 가집니다.
사람도 혈통이 중요합니다......... 그 혈통에는 사람의 가치관과 사상이 들어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의 혈통을 말씀하십니다.
빛으로 오신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의 혈통이요, 하나님의 자녀에 걸맞는 권세를 주셨다.
영접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께로 난 자들입니다.
사람들은 혈통을 자부 말합니다.
여러분의 아버지는 누구입니까?.......
육적인 사람들이 말할 때에는 사람의 혈통먼저 말이 나옵니다.
그들은 영생이 없기 때문이니다..
육신의 혈통만이 왕성한 자는 신적 혈통인 하나님의 혈통에서 끊어진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합니다.
영생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영원토록 아버지이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독생자를 우리들의 심령에 품고 있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된 영생하는 하나님의 혈통입니다.
하나님의 혈통은 영생하는 혈통이기에 우리들은 보통 가문이 아닙니다.
영생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은 다릅니다.
[요일]2:5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하게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그의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요일]2:6 그의 안에 산다고 하는 자는 그가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할렐루야!
결론 : 그리스도가 함께하는 자는 은혜 위에 은혜러라.
[요]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은혜는 그냥 오는 것이 아니라 은혜를 주는 분이 있어야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은혜는 진리의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게 됩니다.
예수 믿는 자들에게 오는 놀라운 은혜는 일시적인 은혜가 아닙니다.
[요]1:16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은혜위에 은혜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는 중단이 되지 않는 은혜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는 멈춤이 없이 계속되는 은혜입니다.
은혜 위에 은혜는 오직 주님만이 주시는 은혜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과 함께 하시어 은혜위에 은혜가 넘치는 심령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요1장1-5절)
1.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1-2절)
2. 말씀이 함께 하지 아니하면 하나도 된 것이 없느니라.(3절)
3. 생명이 함께 있는 자는 사람들의 빛이라.(4절)
4. 영접하여 함께 하는 자는 하나님의 자녀라.(12-13절)
결론 : 그리스도가 함께하는 자는 은혜 위에 은혜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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