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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13. 로마 감옥에 첫 번째 투옥
박진숙 2025-03-20 추천 0 댓글 0 조회 11

13) 로마 감옥에 첫 번째 투옥

 

 

 (1) 지명 연구

 

  로마(@Rwvmh : hro'-may : 흐로메)강하게 하다라는 뜻이다.

 

 

 (2) 역사 배경

 

  옛날 로마는 나라의 이름도 되고, 수도의 이름도 되었다. 로마는 이베리아 반도 중앙 서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도 바울 당시는 동으로는 유프라데스강, 서로는 나일강, 남으로는 지중해, 북으로는 남부 유럽까지 방대한 영토를 점령. 소유하였고, 한 때는 아프리카와 아시아까지 세력을 확장한 때도 있었다.

  로마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바울이 순교한 도시이다. 로마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도시들 중 하나이다. 로마의 역사는 B.C. 3000년경부터 시작된다.

  로마는 이태리 반도 중앙 서부 티버강(Tiber river) 동쪽 뚝을 따라 7언덕에 건설되었다. 처음에는 목자들과 농부들의 마을인 팔라틴 언덕(Palatine Hill)이 로마의 근원지로 그곳을 로마라고 불렀다.

  로마의 웅변가. 정치가. 철학자인 시세로(Cicero, B.C. 106-43)에 의하면 B.C.753년을 로마 도시국가의 원년으로 삼았다. 로마제국은 B.C. 6-7세기부터 주변 민족들을 통합하여 공화국(Republic)으로 세력을 키우며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B.C. 509년 에트루리아(Etruria)두 집정관에 의하여 통치되는 공화국으로 되다. B.C. 494년 로마 공화국 민주주의 형태가 채택되었고, B.C. 270년 로마제국은 이태리 반도를 넘어 영토를 크게 확장하여 대제국이 되다. B.C. 3세기 중엽에는 알프스(Alps)까지, B.C. 63년 폼베이(Pompey) 장군은 팔레스타인까지, B.C. 31년 옥타비우스(Octavius)는 애굽 지경과 사하라 사막까지,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는 북쪽 가을(Gaul:불란서)과 브리티시(British) 국경까지, A.D. 9년 어거스터스(Augustus)는 북쪽 라인-다뉴브 강(Rhine-Danube)까지 국경을 넓혔다.

  로마제국은 B.C. 753년부터 A.D. 476년 게르만 족에 의하여 멸망당할 때까지 1,229년 동안 대제국으로 유럽과 지중해 일대를 통치하였다. A.D. 1871년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 1946년부터는 이탈리아 공화국의 수도이다.

  사도 바울 당시 로마에는 100만 인구가 살았는데 로마는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지금도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이며 인구 270만 명의 대도시이다.

  

 

지하무덤(catacombs)

 

  로마에 있어서의 초기 그리스도 교인의 지하은신처의 명칭이다. [카타콤베]라는 명칭의 기원은 비교적 새롭고, 지하 매장소에 고고학적 연구가 착수된 15세기에 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 로마에 가장 많고, 이탈리아 전토, 수리아(시리아), 알렉산드리아, 시칠리아, 스페인에도 있다. 규모가 가장 큰 것은 로마의 카타콤으로서, 현재까지 알려져 있는 것은 35개소, 낭하의 총면적은 250ha, 낭하의 전 연장은 650km에 달해 있다. 공도의 연변에 입구가 마련되어 있었는데, 박해가 세차지자 처음의 입구는 막아버리고, 3세기 중기에 그리스도교인의 집회가 금지되자, 카타콤 내에 홀을 만들어, 그곳에서 예배하였는데, 그 중에서 그리스도교 미술이 발생했다. 서 고트 왕 알라리쿠스(Alaricus I 370-410)의 로마 침입(401)이래, 5세기 중엽부터는 그곳에 매장 될 수 없게 되어졌다. 로마의 카타콤의 유골은, 8세기 중기 이후 다른 곳에 이장되고, 지금은 로마의 명승으로 되어 있다.

 

 

 (3) 성경 본문

 

 (28:16) 우리가 로마에 들어가니 바울에게는 자기를 지키는 한 군인과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바울은 큰 죄를 범한 일이 없으며, 정치적으로 위험한 자도 아니요, 도주할 자도 아니요, 로마 시민권자요, 복음전하는 자이므로 로마 정부 당국자들은 바울을 셋집에 살면서 자유로이 행동하도록 허용하였다. 다만 바울을 지키는 한 감시자만 항상 같이 있게 하였다.

  바울은 첫 번째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다(A.D. 61-63). 바울의 생애에서 가장 귀한 열매 맺는 기간이었다.

 

 

(행 28:23-31) 그들이 날짜를 정하고 그가 유숙하는 집에 많이 오니 바울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강론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증언하고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말을 가지고 예수에 대하여 권하더라 그 말을 믿는 사람도 있고 믿지 아니하는 사람도 있어 서로 맞지 아니하여 흩어질 때에 바울이 한 말로 이르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우둔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오면 내가 고쳐 줄까 함이라 하였으니 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그들은 그것을 들으리라 하더라 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머물면서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

 

 

 

  사도 바울이 2년 동안 감옥에 수감되어 있으면서도 비교적 자유로운 생활을 한 것을 보면 적어도 A.D. 62년경 이전에 투옥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A.D. 64년 여름에는 네로(Nero)가 그리스도인들을 심히 핍박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가택 연금 상태에서 한 감시자는 항상 있었으나 찾아오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무런 방해 없이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하였다. 사도 바울이 로마로 보내심을 받은 목적은 예루살렘에서 복음을 전파한 것 같이, 로마에서도 증거 하여야 하리라는 말씀의 성취이다(23:11). 바울은 로마에서 2년 동안 복음을 담대하게 전파함으로써 그 목적이 성취되었다.

  바울은 가택 연금 상태에서 과거 어느 때보다 훨씬 더 담대하게 전적으로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였음을 보여준다.

  사도 바울은 일정한 날짜들을 정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집중적으로 복음을 전하였다. 법적으로 아무런 방해나 제재를 받지 않고 2년 동안 그에게 오는 사람들에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천국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전파하고 가르쳤다. 그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이다.

 

 

 (4) 옥중 서신

 

  사도 바울은 로마 감옥에 제1차 투옥되어 있는 2년 동안 복음 사역에 전력하면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 등의 옥중서신들을 성령님의 영감으로 기록하였다(딤후 3:16).

 

 

  ① 에베소서 (A.D. 61-63년경)

 

   ㉠ 배경 및 목적

 

  수감생활 기간 중에 그가 선교한 이방인의 교회에 대한 바울의 관심 사항은 이신칭의복음의 변증과 그 복음의 전파라는 선교적인 관점보다도, 이미 설립된 그리스도의 교회에 관한 목회 지도에 집중되어 있었다.

  에베소서는 특정 지역교회의 문제를 주제로 한 것이 아니라, 복음이 전파되어 지상에 세워져 가고 있는 지상의 모든 교회들이 하나의 보편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인식을 전제로, 각 지역교회들이 함께 읽도록 작성된 회람서신으로 작성되었다.

 

   ㉡ 구조와 내용

 

  에베소는 크게 세 개의 구조로 되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비밀인 영광스러운 교회에 과한 신학적인 내용(1:3-4:16), 둘째는 하나님의 교회의 성도들의 새로운 삶에 관한 실천적인 내용이고(4:17-6:9), 셋째는 이를 위한 영적인 전쟁에서의 승리를(6:10-20) 당부하고 있다.

 

  ② 골로새서 (A.D. 61-63년경)

 

   ㉠ 배경 및 목적

 

  골로새는 에베소로부터 동쪽으로 175km쯤 내륙으로 들어가서, 라오디게아와 히에라볼리가 있는 부르기아 지방의 작은 도시이다. 바울은 2차 선교 여행을 끝내고, 잠시 예루살렘과 안디옥에 들려서 선교 보고를 한 다음, 다시 3차 선교 여행에 들어가면서 에베소에 도착하기 전 갈리다와 브루기아 땅을 차례로 방문했을 당시, 바울이 골로새에도 들려서 전도했을 것으로 판단된다.

  골로새 교회에도 할례’(2:11,16)를 강조하는 유대적 율법주의의 위협이 있었다. 유대 율법주의 외에도 초대교회에 침투한 새로운 이단은 영과 육을 분리하는 헬라철학의 이원론적 사상에 기초한 영지주의(2:21~23)와 그로부터 연유된 혼합주의의 발호와 위협이었다.

  골로새서는 교회에 침투한 이러한 이단들을 배격하고 참된 기독론적인 진리 위에 교회를 바르게 세우기 위한 목적으로 쓰였다.

 

   ㉡ 구조와 내용

 

  골로새서는 크게 두 개의 구조로 나눌 수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우월성과 충족성을 논하며 이단 사상에 대처하도록 요구하는 교리적인 내용이다(1:15-2:23). 둘째는 그리스도에 대한 복종이라는 실천적인 삶의 교훈이다(3:1-4:6).

 

 

  빌레몬서 (A.D. 61-63년경)

 

  배경 및 목적

 

  골로새교회의 빌레몬에게 개인적으로 보낸 서신이다. 빌레몬서는 바울이 빌레몬에게 그의 도망 노예 오네시모를 용서해 줄 것을 부탁하는 개인서신이다. 이 빌레몬서는 바로 그러한 기독교 정신을 잘 반영하고 있다. 이처럼 바울이 전한 이신칭의복음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무기로 로마의 사회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는 변혁적인 성격을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 구조와 내용

 

  빌레몬서는 아주 간단한 개인서신으로, 내용은 바울이 빌레몬에게 그의 도망 노예 오네세모를 용서해 줄 것을 부탁하는 내용이다.

 

 

  ④ 빌립보서 (A.D. 60년 말 혹은-61년 전반기)

 

   ㉠ 배경 및 목적

 

  빌립보서는 바울의 옥중서신 중에서 맨 나중에 쓰여 진 서신이다. 빌립보 교회는 핍박을 견디며 복음을 실천하고 가난하지만 바울을 돕는 긍정적인 측면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외부의 핍박을 두려워하고 바울의 수감에 낙심하며 교회가 분여의 위험에 처해 있었다. 이처럼 상반된 두 가지 상황을 배경으로 빌립보서가 쓰여 졌다.

 

   ㉡ 구조와 내용

 

  빌립보서는 쓴 빌립보 교인들이 보내준 헌금에 대해 감사하기 위해서(1:5, 4:10-19), 자신의 형편을 알림으로서 빌립보 교인들이 박해 중에도 힘을 얻게 하기 위하여(1:12-26), 빌립보 교인들의 분열을 막고 연합하게 하기 위하여(2:1-11), 그리고 율법주의 악영향을 깨우치기 위해서(3:3-11)였다. 빌립보서는 교리적으로 기독론을 다루고 있다. 동시에 그리스도인의 성숙한 삶의 원리를 교훈하고 있다.

 

 

  (5) 옥중 동역자

 

  바울의 옥중서신에 의하면 그는 감옥에서 혼자 있었던 것이 아니고 (시기적으로 차이는 있었지만) 누가, 디모데, 에바브라디도, 에바브라, 두기고, 마가, 오네시모, 아라스다고, 유스도, 데마 등 적지 않은 동역자들과 함께 생활하고 있었다.

 

 

 

바울의 감옥(1)

 


 

바울의 감옥 (2)

 


 

바울의 감옥 교회 광장 근처에 카타콤이 있다 (1)

 


 

바울의 감옥 교회 광장 근처에 카타콤이 있다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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