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수라구사
(1) 지명연구
수라구사(Suravkousai : soo-rak'-oo-sahee : 쉬라쿠사이)는 어원이 불분명하다. 현재 지명은 시라쿠사(Siracusa)이다.
(2) 역사적 배경
시실리 섬의 동쪽 영안에 있는 항구 도시인데, 고대에는 동도 제일의 성읍이었다. BC 734년 고린도의 식민이 의해 종전의 베니게 식민의 행해진 땅에 개발된 것인데, 비옥한 지미(地味)와 충분한 일광 때문에 농업이 발달하고 해운(海運)의 편이 좋아 상업 도시로서 번영하였다. 이 도시는 유력한 헬라 도시로 되어 BC 5세기에는 주위 27km(그 중 16km는 지금도 남아 있다)의 성벽에 둘러싸여 있고, 인구는 50만을 헤아렸다고 한다. 유명한 아덴의 시실리 원정군을 격파했다(BC 415-413). 성읍은 때로는 왕국으로 되고, 때로는 민주정체로 되었다. BC 241년 로마가 시실리 섬의 서반(西半)을 카르타고로부터 탈취했지만, 시라구사 왕들과는 동맹을 유지하였다. 수라구사 최후의 왕은 카르타고에 가담하여 음모를 꾸미고 BC 212년 로마의 장군 마르켈루스(Marcellus)에게 포위 점령되었다. 그리고 전도는 두 사람의 무장에 의해 집정관(執政官)이 다스렸다. 무장 중 한 사람은 서쪽의 리루바예움에, 또 한 사람은 동쪽의 수라구사에 주재하였다. 성읍은 BC 2세기까지 번영을 계속하였다. 그 후는 중요성을 잃었지만, 아직 섬의 동쪽 절반의 수도로서 남아있었다. 신약 시대에 주민의 대부분은 로마 시민이었다.
수라구사는 이탈리아 남부 동남쪽 연안에 위치한 시실리(Sicily) 섬(2,109km²)에서 이오니안 해(Ioannina sea)로 나가는 수라구사 만(Gulf of Syracuse)에 있는 가장 중요한 항구 도시로서 헬라 문화와 문물이 일찍이 들어왔다. 시세로(Cicero)는 수라구사를 “가장 위대한 그리스도의 도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극찬하였다. 수라구사는 시실리 왕국의 수도였으며, 네이폴(Naipaul) 왕국과 연합하여 1860년 이탈리아로 통일되었다. 시라쿠사는 이탈리아의 자치구로서 396,175(2001년 기준)명의 인구가 살고 있다.
(3) 성경 본문
(행 28:12) 수라구사에 대고 사흘을 있다가 |
신약 시대에 주민의 대부분은 로마 시민이었다. 바울은 멜리데 섬을 출항하여 로마로 가던 도중, 이 수라구사에 정박하여 사흘을 지냈다. 그는 3월 5일의 항해 시작보다 일찍, 그러니까 2월 중순 지나 멜리데 섬을 출항했을 것이다. 날씨가 순조로 왔으면 이 시기에라도 무모한 출항은 아니었다. 수라구사에서 바울은 전도하지 않은 듯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유명한 카타콤베가 있어 일찍부터 기독교가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수라구사 지도
수라구사 항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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