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사모
(1) 지명 연구
사모(Savmo" : sam'-os : 사모스)는 ‘높은 곳’이라는 뜻이다. 현재 지명은 사모스(Samos)이다.
(2) 역사적 배경
소아시아의 서안, 에게 해 제도 중 하나이다. 사모 섬은 무칼레갑(Cape Mycale, 표고 1,255m)의 연장인데, 이것과는 겨우 폭 2㎞의 해협으로 떨어져 있다. 동서 38㎞,면적 491㎢으로 거제도(389㎢)보다 약간 크다.
우량이 많기 때문에 삼림이 무성하고 평원은 포도와 올리브 등의 과수 재배가 성하다. 일찍이 B.C. 3000년부터 거주했는데 B.C. 1100-1000년 경 이오니아인이 식민한 이래 융성하게 되었다. BC 6세기에 사모는 건축, 조각, 금세공 등 우수한 기술자에 의해 빛나는 시대를 마크했다. 사모스 섬이 낳은 최대의 인물은 철학자 피타고라스(Pythagoras 582-497)였다. 이 섬의 수호신 헤라(Hera)의 신전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이다.
B.C. 190년 수리아에서 독립했지만 133년 로마에 항복하여 84년 로마의 속주 아시아에 병합되고 17년 아구스도에 의해 자유시로 되었다. 이 땅에는 유대 식민도 많고 로마에 우대(優待)를 받았다(마카비 1서 15:23).
사모의 참주(主) 폴루크라테스(Polycrates, BC 522년 경)는 도시 방어의 견지에서 성벽 내에 물을 끄는 대 토목 공사를 계획하였다. 그는 메가라(Megara)의 유팔리노스(Eupal inos)에게 명하여 착공시켰다. 이것은 암펠로스 산(Mt. Ampelos)의 북쪽 골짜기에서 853m의 수도관(개와를 이어 만든 것)으로 산복으로 물을 끌고 거기서부터 산을 관통하는 길이 990m의 터널 수로를 파 서쪽 성벽 안으로 끌은 것이었다. 이 터널은 북과 남 양쪽에서 판 것으로 중앙 접촉 지점에서 근소한 차이가 생겼을 뿐이다. 이것은 정확도가 높은 토목 기술이 발달되어 있었던 것을 나타내고 있다. 이로부터100년 후의 역사가 헤로도터스는 "이것은 헬라인에게 현존하는 최대의 토목 공사이다"라고 상찬하고 있다.
사모는 무역항으로 경제적 번영, 피타고리온(Pythagorion)으로 알려진 사원, 사원과 연결된 길, 장터, 의회건물, 목욕탕, 체육관, 극장, 기독교 교회당 등이 있다.
사모는 이솝 우화의 창작자인 이솝의 고향이다. 이솝은 아이소포스(Aisopos)의 영어식 표기인데, 헤로도토스에 따르면 BC 6세기 사람으로 사모스 사람 이아도몬의 노예였으며, 델포이에서 살해되었다고 한다.
(3) 성경 본문
(행 20:15) 거기서 떠나 이튿날 기오 앞에 오고 그 이튿날 사모에 들르고 또 그 다음 날 밀레도에 이르니라. |
기오섬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내고(행 20:15), 그 다음날 계속 남쪽으로 내려가 사모섬(에게 해에서 중요한 섬들 중 하나)에 도착하여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냈다(행 20:15). 그 다음날 계속 남쪽으로 항해하여 밀레도에 이르렀다(행20:15).
사모섬 피타고라스항
사모섬 전경
사모섬 헤라 신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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