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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1. 수리아 안디옥
박진숙 2017-05-11 추천 0 댓글 0 조회 455

1) 수리아 안디옥 <1, 2차 전도여행 출발지역>

 

(1) 지명 연구 (1차 전도여행 참조)

 ‘Αντιοχεια (안티오케이아 Antionch), 안디옥 : 전차, 병거

안디옥은 전차 또는 병거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전쟁이 많았던 시대에 강인한 인상을 풍기며 용맹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묘한 것은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구원의 복음이 안디옥에서 성정한 후 탱크처럼 온 세상으로 진격하여 정복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 안디옥을 택하시고 그곳을 복음의 전진기지로 삼아 복음을 확장시키신 것은 안디옥의 이름과도 일치합니다

 

 

 

 

(2) 역사적 배경 (1차 전도여행 참조)

안디옥은 다른 안디옥이란 이름을 가진 도시들과 구분하기 위해서 수리아 안디옥이라고 부른다. 현재 안타키야(Antakya)로 부르며 정식 명칭은 하타야(Hataya)이다.

안디옥은 B.C. 323년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그의 부하였던 4대 장군들이 헬라제국을 4등분 하는 과정에서 시리아 일대를 차지한 셀레우코스 니카토르(Seleucos Nicator)가 그 지배력을 공고히 하기 위하여 B.C. 300년에 세운 도시로 자신의 아버지인 안티오쿠스(Antiochus)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였다. 현재는 터키의 안타키아(Antakya)로서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로마, 알렉산드리아와 더불어 세계 3대 도시였다. 알렉산더 대제가 유럽과 아시아를 하나로 묶어 헬레니즘 문화를 창출한 도시였다. 요세푸스에 의하면 B.C. 2세기 이후 많은 유대인들이 안디옥에 정착하여 A.D. 1세기에는 유대인의 수가 많이 증가되었다고 한다. 따라서 언어들도 상이하였다. 본토인들은 아나톨라어, 로마인들은 라틴어, 유대인들은 히브리어, 구스디아인들은 아프리카어 등 각기 자국어를 사용하면서도 헬라어를 공통으로 사용하였다. 안디옥은 수리아 지방의 로마 행정 수도가 되었고, 도시 근교에 헬라 여신 다프네 신전이 있었다. 예루살렘교회는 첫 순교자 스데반 집사가 돌에 맞아 순교한 후(7:59~60), 예루살렘에 핍박이 더욱 심하여(8:1) 그리스도인들은 지중해 연안 구브로 섬과 소아시아 여러 지방으로 흩어졌다. 바울은 이러한 다민족, 다문화, 다종교의 대도시에 이방세계를 향한 선교본부를 정했다.

안디옥은 이집트의 람세스와 히타이트의 무와탈리스 대왕간의 카데슈성을 놓고 자웅을 겨뤘던 오론테스 강상에 위치하고 있다. 오론테스 강은 지중해로 흘러드는데 해변의 강 하구에서 32km 거슬러 올라간 곳에 안디옥이 자리 잡고 있다. 현재 오론테스강은 수량이 줄어들고 강바닥이 상승하면서 강으로서의 기능이 축소되었지만 당시에는 지중해에서 안디옥가지 32km나 강을 통해서 배가 왕래하였다. 그러므로 안디옥은 실루기아 지방의 중요한 항구로 자리를 잡았고, 동시에 육로 소아시아, 시리아, 팔레스타인 등과 연결되었기 때문에 상업적인 거래가 활발하였다. 교역의 조건이 좋은 안디옥에는 마케도냐인, 헬라인, 시리아인, 유대인, 토착민 등이 섞여 살았다. 이런 다민족 체제는 다른 종교와 사상과 이론에 대한 수용성을 넓혔는데 현재도 이러한 특성은 살아 있어서 안디옥에 많은 외국인들이 살며 기독교인들도 약간은 활동의 자유로움이 있다. 이러한 특성은 스데반이 순교하면서 흩어진 일부 기독교인들이 이곳에서 복음을 전했을 때 유대인이면서도 비유대적 교리의 가르침은 이곳 사람들을 매혹시켜 기독교가 크게 성장할 수 있는 배경이 되기도 했다.

더욱이 헬라제국을 무너뜨린 로마제국이 B.C. 64년 시리아를 점령하면서 안디옥은 시리아 지역을 지배하는 제국의 수도가 되었고 로마의 동방정책의 중심지가 되었다. 때문에 도로건설이 활발하게 진행되어, 안디옥과 로마를 연결하는 가도가 형성되었으며 이 도로 상에서의 치안은 비교적 안정되어 인적 물적 자원의 이동이 활발하게 되었다. 더불어 안디옥에서 성장한 기독교가 세계로 뻗어 나아가는데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바울은 이 가도를 따라 여행하며 복음을 전했다. 안디옥의 다민족 사회는 교회의 성장을 촉진시켰고, 이렇게 성장한 교회는 다시 로마의 잘 발달된 도로망을 따라 세계로 퍼졌다. 안디옥의 건설과 그에 따른 지리적, 상업적, 군사적 특성은 결국 복음의 전파 통로를 개설하는 것이었다.  

 

 

(3) 성경 본문

 

 (18:22) 가이사랴에 상륙하여 올라가 교회의 안부를 물은 후에 안디옥으로 내려가서

 

 

  수리아 안디옥은 바울의 1,2차 선교 출발 지역이었으며, 바울의 3차 선교여정 역시 수리아 안디옥에서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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