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바울의 출생에서 사역 전까지 (AD1~45년)
1.바울의 가정
바울의 아버지는 베냐민 지파였고(빌 3:5), 바리새파에 속했다(행 23:6). 바울 또한 유대교와 율법에 철저한 바리새인이었다(행 23:6). 바울은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유대인이었다. 예루살렘의 천부장 루시아에게 바울은 “나는 나면서부터 로마 사람‘(행 22:28)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분명을 말하고 있다. 로마의 시민권자라는 법적 신분 이상으로, 바울이 헬라 도시 다소의 시민으로서 태어나면서부터 헬라 문화에 익숙한 사람이었으며, 특히 당시 국제어로 통용되고 있던 헬라어에 능통했다는 사실은 크게 주목할 일이다.
바스레즈(Baslez)에 의하면 “바울의 어머니는 미망인이 된 후 재혼하여 루포를 낳았다. 그리고 루포는 어머니를 ㅂ모시고 있었다. 따라서 바울의 어머니는 또한 루포의 어머니”라고 주장한다(롬 16:13). 또한 바울의 누님의 아들인 조카가 삼촌인 바울에게 유대인들 40명의 음모를 고하였고, 바울은 백부장에게 청하여 조카로 하여금 유대인들의 음모를 천부장에게 고하게 한 것을 보면 바울의 누님은 예루살렘에서 살았다(행 23:16).
2.바울의 유년기
헬라 도시 출신이면서도 근본이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이스라엘인이며 베냐민 지파로서 율법을 철저히 지키는 바리새파 유대인이었다(행 23:6). 히브리어에 능했음은 물론 유대인으로서 모든 특성을 전수받은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으로 성장했다(빌 3:5-6).
헬라의 도시인 길리기아 다소에서 자란 바울은 당시 국제적으로 통용되고 있던 헬라어에 능통했고, 또한 헬라 문화에도 익숙한 사람이었다(행 17:28, 딛 1:12). 그가 유년시절을 보낸 다소는 대학도시로 수사학·철학과 문학 등 일반 문학의 전 분야를 가르친 곳이었다. 로마인들은 헬라어를 배척하지 않고 사랑했으며 그리스의 교육, 철학(스토아 철학), 수사학, 문학 등을 배우려고 했다. 정복자들도 헬라어를 제 2의 외국어로 배웠다.
헬라-로마 세계에서 복음 전도자로 활동함에 있어서, 바울이 헬라 문화를 잘 알고 헬라어에 능통할 수 있었던 점은 그의 태생이 헬라의 도시 다소 출신이라는 사실을 더나서는 설명될 수 없는 부분이다.
3.바울의 교육
누가는 바울이 “장막을 만드는 자( skhnopoiov":스케노포이오스’)”였다고 말한다(행18:3). 이로써 우리는 바울이 지방특산품인 ‘길리기움’을 제조하는 일에 종사했으며, 유복한 가정에서 자랐음을 알 수 있다.
바울은 특별히 당시 산헤드린에서도 명망이 높았던 교법사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공부했다(행 22:3). 가말리엘은 바리새인이요, 산헤드린 공의회원이요, 1세기에 가장 존경받는 교법사였다. 당시 이스라엘에는 율법을 가르치는 유명한 두 학파가 있었다. 율법을 엄격하게 문자적으로 적용하는 것을 가르친 삼마이 학파와 율법을 변화하는 사회에 유동적으로 적용할 것을 가르친 힐렐 학파가 있었다. 바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은 힐렐의 손자였다.
바울은 유년시절 다소에서 성장하면서 헬라문화와 헬라 세계의 지식을, 예루살렘에서는 가말리엘 문하생으로 유대인 세계의 지식(율법)을 터득하였다.
4.바울의 청년기 (30대 초반)
회심 전 바울은 유대교에 열심이었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을 심히 훼방하고 핍박하고 폭행하였다. 바울은 초대교회의 헬라파 유대인 기독교도들을 대표했던 스데반 집사의 순교(31년) 현장에서 “옷을 맡은 사울이라는 이름의 청년”(행 7:58)으로 처음 신약성경에 등장한다. 바리새인 랍비였던 그는 예수의 십자가 처형을 율법의 관점에서 매우 정당한 조치로 간주하고 있었다. 오순절 날의 성령 강림을 통해서 십자가에 처형된 나사렛의 예수를 따르는 무리들에 의해서 시작된 신약교회의 초기단계에서, 그는 기독교 교회를 과도한 열정에 사로잡힌 핍박자였다(행 9:1-3, 22:4). 다메섹 회심 이전의 바울은 복음의 참다운 성격을 알지 못했고(딤전 1:13) 그가 하고 있는 행위가 하나님께 봉사하는 일로 생각했었고(행 22:3), 유대교와 율법에 대한 과도한 신앙적 열정을 품고 교회를 대적하고 있었다(행 25:5).
5.바울의 회심
바울은 교회를 핍박하기 위해 다메섹(Damascus)으로 가는 도중 회개하였다(행 9:3). 바울과 바울의 동행인들이 다메섹에 가까이 왔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부터 밝은 빛이 바울의 일행에게 비추었다(행22:6). 그들은 땅에 엎드려졌고 바울은 히브리말로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라고 말하는 음성을 들었다. 이 질문에 바울은 “주여 뉘시오니이까”(행 9:5)라고 물었다. 그때에 응답이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행 9:5)고 들렸다. 이 말씀으로 바울은 자기가 핍박해온 사람이 지금 하늘에서 자기와 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심히 놀랬다. 바울은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행 22:10)라고 물었다. 그 대답은 “네가 일어나 성으로 들어가라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행 9:6)였다. 사울이 일어났으나 아무것도 볼 수 없어 사람들의 손에 이끌려 다메섹 성으로 들어갔다. 사울은 유다라 하는 사람의 집에서 기도하면서 사흘 동안 금식했다(행 9:9). 사흘째 되는 날 유대 기독교인 아나니아가 주님의 지시를 받고 사울을 방문하여(행 9:11,12). 사울이 죄 용서함 받은 사실과 세례를 받고 성령의 선물을 받아야 할 것을 말한다. 사울은 세례를 받았고 다시 보게 되었다(행 9:18).
다메섹의 계시 체험으로 바울은 예수와 그의 교회에 대한 열심 있는 핍박자의 위치에서 이제 복음을 위한 이방인의 사도로 그 삶의 자리를 완전히 바꾸었다(행 13:47). 유대교의 유일신 신론에서 기독교의 삼위일체 신론으로 그의 신관을 완전히 바꾸었다. 유대인으로서 바리새파 전통의 율법주의를 벗어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신칭의’ 복음으로 자신의 구원관을 완전히 바꾸었다. 율법으로는 도달할 수 없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는 구원의 복음이다(롬 3:21~22). 유대인들은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할례와 율법이라는 신분적인 표지가 그들의 구원을 보장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롬 3:28).
6.바울의 회심 후 (A.D.32년 ~ 45년)
1) 바울은 다메섹 회심 사건으로 엄청난 대격변을 겪었다. 교회를 핍박했던 바리새인 사울이라는 옛 사람은 죽어 버렸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순종하는 새 사람 바울로 완전히 거듭난 것이다. 회심 직후, 바울은 곧바로 다메섹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며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메시아임을 증거 했다(행 9:19~22). 유대인들은 바울을 죽이기로 공모했고 바울은 다메섹에서 도망하게 되었다(행 9:23~25).
2)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고, 곧바로 아라비아로 가서 거기서 3년(32~35년)을 보냈다. 3년이 지난 후에 바울은 아라비아 나바태나 왕국의 아레다 왕의 관원들의 체포 위협을 피하여 다메섹을 탈출,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35년). 바울의 아라비아 생활은 사도행전에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아라비아 여행을 언급하고 있다(갈 1:17). 아라비아 여행에서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다(갈 1;17).
3) 바울이 예루살렘을 방문(A.D. 35)한 것은 개종 후 삼 년만이었다. 바울은 15일간 예루살렘에 머물렀다(갈 1:18).
4) 예수님의 제자가 된 바울은 당연히 예루살렘에 있는 12제자들을 만나기 원했다. 그러나 바울이 예루살렘에 와서 12제자들을 만나려고 했을 때, 12제자들은 그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행 9:26). 제자들은 얼마 전까지 교회에 큰 해를 끼친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5) 바울이 난처한 상황에 있을 때 바나바는 적극적인 중재역할을 한다. 바나바는 바울 곧 사울을 ‘데리고’ 사도들에게 간다(행 9:27). 바나바는 사울을 강하게 붙들고 바울의 개심에 대해 조사한 듯 하다.
6) 회심한 후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바울에게는 항상 죽음의 그림자가 뒤따른다. 예루살렘에서도 헬라파 유대인들이 바울을 죽이려 한다. 이 사실을 안 형제들이 바울을 다소로 보낸다(행9:29~30).
7) 바울은 예루살렘 여행 후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방에 가서 약 10여년(35~45년) 동안 무명의 전도자로 활동했다(갈 1:21).
8) 예루살렘 교회는 바나바를 안디옥교회의 새 지도자로 파송했다. 안디옥교회의 새 지도자로 부임한 바나바는 곧 길리기아의 다소로 바울을 찾아가서 자신의 동역자로 청빙해 왔다(행 11:25,26).
9) 안디옥 교회에서 비로소 이방인의 사도로서 본격적인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행 11:26). 이 기간 중에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에 이른다는 ‘이신칭의’의 복음을 기독교 교회의 근본 교리로 해석하여 확정함으로서,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 위한 보편적 기독교 교회를 설립할 수 있는 근본토대를 구축하는 결정적인 사역을 감당했다. 바울은 예루살렘 2차 방문을 통해서 바울이 얻은 최대의 성과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그의 ‘이신칭의’ 복음을 제출하고, 특히 이방인의 사도라는 자신의 직임을 공적으로 확인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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