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이 좋아야 합니다....(삼상31장1-6절)
‘끝이 좋으면 다 좋다(All’s Well That Ends Well)’는 독일의 격언이 있습니다.
끝이 좋으면 만사가 다 좋다...세익스피어의 책도 있습니다.
인간이 마지막에 즈음하는 웰다잉에서 인간의 ‘해피엔딩’적 결말은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웰다잉‘의 세 가지 범주로 구분했습니다.
환자가 연명치료를 중단할 의사가 있다면 연명치료를 중단할 수 있습니다.
환자가 의식이 없다면 가족이나 의사가 환자의 의지를 추정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환자가 의식이 없고 연명치료에 대한 의사를 알 수 없을 때로 합니다..
오영학 한국유품정리관리협회장은 웰다잉 주제에서 생의 마무리를 위해 필요한 네 가지 덕목을 제시한 바 있다.
첫째 본인이 사전연명의료의향서 작성을 한다.
둘째 유언장과 마침표(임종)노트 작성한다.
셋째 자기 권리에 의한 유산 및 유품 정리한다.
넷째 실용적인 장례 및 상조 사전 준비를 한다..
이처럼 현명한 사람은 자신의 생애의 마지막인 장례는 자기가 준비한다......
그러나 저는 믿음의 사람으로써 하나님앞에 나아갈 준비를 찰 하여야 함을 밝힙니다.
오늘은 사무엘상에서 나오는 사울의 신앙에서 참 신앙을 깨달아 마지막을 신앙으로잘 준비하는 믿음의 성도님들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무엘상의 마지막에 나오는 사울왕은 마무리 마져 좋지 않게 맞이하게 됩니다.
[삼상]31:1 블레셋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치매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들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 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불신앙의 사울왕에 때문에 수많은 이스라엘 사우르이 군사들이 죽어야만 하였습니다.
[삼상]31:2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삼상]31:6 사울과 그의 세 아들과 무기를 든 자와 그의 모든 사람이 다 그 날에 함께 죽었더라.
사무엘상의 마지막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있어서 가장 암울한 시기였던 사사시대를 넘어,
[삿]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는 말씀으로 특징 지워지는 혼돈의 시대를 벗어나서
희망과 번영의 시기인 왕정시대를 이어주는 가교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책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무엘상의 기둥 역할을 감당하고 있는 인물은 이 책의 제목이 되고 있는 사무엘이 아니라 사울과 다윗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즉, 사울과 다윗이 사무엘상을 이끌어 가고 있는 두 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축을 이루고 있는 사울은 어두움과 멸망을 대표하고 있는 인물로서 오늘 본문의 내용과도 같이 자살로서 자신의 삶을 마감하고 있습니다.
사울과 같은 삶을 살면 어두움에 처해져서 결국은 멸망당 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사무엘상을 마치면서 사무엘상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사울의 신앙에서 주시는 깨달음의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여야 합니다. (삼상22절)
[삼상]15:22 사무엘이 이르되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이 나오게 된 배경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어느 날 사울에게 아말렉을 공격하도록 명령하십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명령이 사실 이해하기 힘든 명령이었습니다.
[삼상]15:3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명령이셨습니다.
진멸시키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①살려준 장정들은 아말렉은 이스라엘 민족이 출애굽하여 힘들게 광야에서 진행할 때에 끝까지 이스라엘 민족들을 괴롭혔던 민족이었습니다.
첫째로 악의 근원을 놓아두면 나중에 다시 민족이 번성하게 될 때에 또 이스라엘 민족들을 괴롭힐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말렉을 쳐서 멸하라는 이 하나님의 명령은 어찌 보면 지극히 당연한 명령이라고 할 것입니다.
② 아말렉의 부녀자들을 통해서, 그리고 어린 아이들을 통해서 이방의 문화와 우상숭배의 관습이 들어올 우려가 있다는 점에서, 그래도 이 하나님의 명령은 그런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③ 사울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우양, 약대, 나귀까지 죽이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쉬운 명령이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그들의 소유이었던 동물들은 소위 전리품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전리품들은 백성들의 삶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는 이 당시의 관습은 전리품은 취하여 돌아와 분배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동물들마저도 죽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사울은 이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짐승들은 살려서 몰래 끌고 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울 앞에 들려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이 바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삶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기에 내게 유익한 것만을 순종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나에게 유불리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순종하지 않은 자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사울의 불순종은 말씀 그대로 멸망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28: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신]28: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신]28:17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신]28:18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신]28: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사울은 사람들이 세워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께서 세운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워주신 왕일지라도 하나님의 뜻에 불순종하면 면죄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1)사울은 불순종 모델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함으로 실패했습니다.
제사는 제사장이 드리라는 말씀을 어겼습니다.
아말렉을 진멸하고 그들의 모든 소유까지 아낌없이 진멸하라는 말씀을 듣고도 그냥 지나치고 말았습니다.
그런 불순종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는 자리에까지 이르게 한 것입니다.
그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하여 명한 말씀을 불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 보다도 자기 좋은 대로 결정하고 행동하였습니다.
아담도 하나님의 말씀 불순종으로 버림을 받은 것입니다.
선악과 따먹지 말라는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하와가 주는 것을 먹고 말았습니다. 결국 자기도 망하고, 모든 후손들도 저주를 받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풍조가 잇습니다.
주일성수 하십시오, 십일조를 드리십시오, 예배생활에 승리하십시오, 기도하세요,
봉사하세요, 전도하세요, 그러면, 아주 귀찮게 여기는 분이 있습니다.
’좀 조용히 예수 믿고 싶다. 제발 내버려두라! 는 식입니다.
내 멋대로 신앙이 많아요. 안됩니다.
결국, 하나님과 멀어지게 됩니다.
나중에는 돌이킬 수 없는 버림을 받는 자리에까지 떨어질 수 있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면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내 머리에 이해가 되든 되지 않든, 내게 손해가 되든 이익이 되든 하나님의 말씀이면 그대로 순종해야 합니다.
2) 다윗은 도피생활중에도 손해를 보아도 철저히 순종하였습니다.
이 두 사람의 차이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순종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순종은 내 지식과 경험을 뛰어 넘는 것입니다.
목숨까지라도 걸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종입니다.
사울에게 있어서는 하나님의 명령이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명령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지식에, 자신의 이성에, 자신의 경험에 의존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울 앞에서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순종과 불순종의 결과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순종 뒤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불순종의 뒤에는 하나님의 진노와 파멸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다는 것은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하나님 나름대로의 깊은 뜻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무조건적으로 따라갔을 때, 그 순종의 뒤에는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축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순종 뒤에 하나님의 축복이 있는 것입니다.
[신]28: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신]28: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신]28: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명령하셨습니까? 순종하십시오.
그 뒤에 하나님의 축복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순종하였으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책임져 주십니다. 축복해 주십니다.
이 하나님의 축복을 여러분들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과 기도로 끝까지 교제하여야 합니다.
사울과 다윗의 차이점은 바로 기도의 여부였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이었느냐, 그렇지 못하느냐의 차이였던 것입니다.
특별히 사무엘은 사울에게 권면하였던 기도에 대한 유명한 말씀이 있습니다.
[삼상]12:23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삼상]12:24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무엘선지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하고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 가운데서 특별히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기도하기를 쉬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범죄가 된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의미하고 있는 본질의 문제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기도란 기도는 하나님과의 호홉이며 대화입니다.
호홉이란 성령의 충만을 입아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좋아하십니다.
하나님과으 호흡으로 직접적인 대화는 하나님과의 동행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반면에 우리가 이 하나님과의 대화를 게을리하면 섭섭해하신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세상적인 이치에서도 부모님들께 좋은 것으로 해드린다고 할지라도, 많은 돈을 드린다고 할지라도 부모님과의 대화가 없다면 그것은 효도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1)사울왕은 백성들과 하나님앞에 기도를 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사울 왕은 하나님과의 대화를 게을리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울왕은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사울 왕이 큰 일을 만날 때마다
먼저 달려간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무엘 선지였습니다.
사울은 자신이 기도할 줄 몰랐고, 문제가 생기면
사무엘 선지에게 달려가 기도를 부탁한 것입니다.
여기서 깨달을 수 있는 것은 아마 사울도 기도의 필요성 만큼은 인정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삼상]7:8 이스라엘 자손이 사무엘에게 이르되
당신은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쉬지 말고 부르짖어
우리를 블레셋 사람들의 손에서 구원하시게 하소서 하니..라고 했습니다.
사울은 자기는 기도하지 않고 사무엘에게 기조를 부탁하는 것이었습니다.
아니 기도 부탁은 자신도 기도하고 합심하여 기도를 부탁하는 것입니다.
이 사울의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은 편의주의와 합리주의적 신앙의 행태입니다.
그저 기도가 필요하면 사무엘 선지만 찾으면 되었습니다.
목사가 존재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분명히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기 위함일 것입니다.
여러분 스스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스스로가 하나님과 대화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믿고 있다면, 그분을 우리의 아버지로 알고 있다면,
기도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다윗은 매사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움직였습니다.
[삼상]23:2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다윗은 매사를 이와 같이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고 움직였습니다.
하나님과의 대화를 즐기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시편에 기록되어 있는 수많은 다윗의 찬송시를 한 번 보십시오.
[시]16:1 하나님이여 나를 지켜 주소서 내가 주께 피하나이다
그 모든 것이 하나님께 올린 기도문이 바로 다윗의 신앙입니다.
[시]6:9 여호와께서 내 간구를 들으셨음이여 여호와께서 내 기도를 받으시리로다
이 기도로 인해서 다윗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수 있었고,
놀라운 축복 또한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께 연결되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약]5:15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그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받으리라
[약]5:16 그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백하며 병이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을 낫게 하는 기적을 부릅니다.
믿음의 기도는 성령으로 인도함을 받으며 구원으로 인도하십니다......할렐루야....!
기도가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과의 대화가 많으면 많을수록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나라를 열 수 있는 마스터키요, 열린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딤전]4:5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기도의 사람들이 되셔서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거룩으로 나아가는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끝까지 하나님을 사랑하여야 합니다.
사울은 공로를 원수로 갚았던 사람이었습니다.
다윗은 소년 시절에도 골리앗을 물리치었고, 전쟁에 장수로 나아갈 때마다 번번히 승리하였던 공도자였습니다.
나라의 위기에 나아가 목숨을 걸고 싸워 나라를 지키는 다윗을 죽이려고 만 합니다...
사울은 백성을 사랑하였다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는 말을 입에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것을 사랑하였습니다.
[삼상]15:9 사울과 백성이 아각과 그의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 또는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남기고 진멸하기를 즐겨 아니하고 가치 없고 하찮은 것은 진멸하니라
양과 소의 가장 좋은 것과 기름진 것과 어린 양과 모든 좋은 것을 탐하였습니다.
세속적 물질에 메몰되어 좋아하는 탐욕적인 사랑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세상을 사랑하고 탐익하는 이에 대하여 분명하게 말씀을 하십니다.
[시]10:3 악인은 그의 마음의 욕심을 자랑하며 탐욕을 부리는 자는 여호와를 배반하여 멸시하나이다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롬]1:28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롬]1: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는 자의 결국은 멸멍입니다.-
[고전]6:10 도적이나 탐욕을 부리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모욕하는 자나 속여 빼앗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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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요일]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요일]4:2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
[고전]8:3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4.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알고 믿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이해하고 있느냐 하는 올바른 신관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신관은 신앙생활에 있어서 굉장히 중요한 몫을 차지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나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어떠한 분이신가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이해에 따라서 신앙생활의 자세가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사람은 올바른 신앙생활이 불가능한 것입니다.
1) 사울의 하나님에 대한 신관의 이해는 어떠하였습니까?
사울은 하나님을 신중의 신이신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았습니다.
사울은 전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을 깨닫지 못하였기에 숨기려 하였고, 순간 모면하면 되는 줄 아는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사울은 이러한 신관을 가지고 있었기에 하나님과 가까이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세속적인 신앙이 하나님이 무서워서, 하나님을 점점 더 멀리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울의 잘 못된 신관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께서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불신하였습니다. 질병도, 물질적인 환난도, 각종 사고도 다 귀신들의 장난 내지는 탓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나의 창조주요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울은 여호와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결여된 신관인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주일 성수를 안하면 무엇인가 두려움을 느끼고 무엇인가 허전합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예배를 드리니 이 교회 생활이, 이 예배가 감격도 없고, 기쁨도 없습니다.
자기 스스로의 만족을 위해서 교회에 나오고,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은 사울과 다를 바가 없는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단순히 이러한 심정, 이러한 마음가짐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면 그것은 사울의 신관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시기를 바랍니다...
다윗은 철저하게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시]18:1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시]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오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오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시]18:3 내가 찬송 받으실 여호와께 아뢰리니 내 원수들에게서 구원을 얻으리로다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어떻게 확실히 알 수 있습니까?
[삼상]26:11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 너는 그의 머리 곁에 있는 창과 물병만 가지고 가자 하고...
사울만 죽이면 모든 것이 일거에 해결되어 이 힘든 도망자의 신세를 면할 수 있습니다.
사울만 죽이면 다윗은 이제 당당히 이스라엘의 왕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철저한 신뢰하나는 지금 하나님은 다윗의 눈 앞에 계신 것입니다.
다윗의 하나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나를 푸른 초장으로,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이라는 철저한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을 철저하게 신뢰하고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끝이 좋아야 합니다.... (삼상31장1-6절)
1.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여야 합니다. (삼상22절)
2. 하나님과 기도로 끝까지 교제하여야 합니다.
3.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끝까지 하여야 합니다.
4. 하나님의 전지전능을 알고 끝까지 믿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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