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갈2장15-21)
우리 기독교의 역사를 보면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고 말씀을 가르치시고,
훈련시켜 천국복음을 전하게 하심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많은 어려움이 생겼고, 따르던 무리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지만 예수님의 부활, 승천과 오순절 날 성령강림으로 열두 제자와 12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중심이 되어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런 그리스도의 교회가 1500여 년을 내려오면서 교황주의자들의 타락으로 이종교들처럼 혼합된 종교를 만들어버린 것입니다............ (그림1)
그리하여 선각자인 마틴 루터는 비성경적인 것들에 몰두하는 교황주의자들에게 95개조항의 개혁안을 비덴베르그 성당 정문에 게제하고
교황에 맞서 싸운 날이 1617년 10월31일입니다........ (그림 2)
루터를 중심으로 쯔빙글리, 칼빈등이
각 나라와 지역에서 종교개혁자들이 불같이 일어난 것입니다.........(그림 3)
개혁자들의 중심 사상으로는 올바른 신앙의 회복을 위하여 세 가지의 슬로건이 있었습니다.
Sola Gratia, - 오직 하나님의 은총을 외쳤습니다.
오직 은총은 우리의 구원도, 영생도 어떠한 행위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Sola Scriptura - 오직 성경으로를 외쳤습니다.
오직 성경만이 진리의 말씀이며 그 말씀만을 믿고 그 말씀에 따라 순종할 때에 진리의 말씀이 우리들을 구원으로 인도한다는 것입이다.
Sola Fide, - 오직 믿음을 외친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인들을 용서하시는 것은 인간의 보속금이나, 고행의 행위로서가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서 그에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이처럼 종교개혁가들은 모든 불의와 이단을 버리고 초대교회로 돌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는 오직 믿음으로 복음이 선포되었고 이에 반하는 것은 이단으로 배척하엿습니다.
초기 교회는 성령님의 주도하에 움직이는 교회였습니다.
매 주일 마다 부활의 기쁨, 감사, 헌신봉사, 사랑과 은혜와 찬양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
날마다 복음이 전파되어 부흥하고, 성숙해지는 교회가 우리에게도 다다랐습니다.
복음이 확산되는 곳에 항상 사탄의 공격도 만만치 않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나라에서도 기독교 신앙의 절대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사회 경제 발전으로 풍요로운 세대에 이르니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도전하는 사탄의 공격이 시작된 것입니다.
마지막 악한 영의 싸움은 당연한 일인데 마지막 영작 싸움에서 지고 무너져서는 안됩니다.
우리 사회는 동성애와 차별금지법등의 불신앙적 악한 영들의 도전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는 단지 좌우파의 대결이 아니라, 동성애만이 아니라 마지막 보루인 기독교를 말살하여 자유가 있는 자유민주주를 무너트리려는 절대절명의 시기가 온 것입니다.
오늘의 현실을 직시하여 우리들의 신앙을 점검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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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소아시아와 유럽 지역에 복음을 전하며 교회를 세우게 되었는데 당시 사역자가 적었고, 바울 사도는 소아시아 전역을 전도하기를 원했기 때문에 한 교회만 붙들고 일할 수 없어서 일단 교회를 시작하게 하고서 또 다른 지역으로 전도여행을 하였던 것입니다.
갈라디아 지방에서 바울이 떠나자 이상한 자들이 숨어 들어와 교인들을 미혹하였습니다.
바울은 이신득의의 복음을 전하면서 복음을 왜곡하는 자 들에게 미혹하고 있기에 이를 대항하기를 바라며 보내는 서신서입니다.
이 미혹하는 두 종류의 거짓 교사들이 갈라디아 지방에 들어 온 것입니다.
첫째는 유대주의적 기독교 선생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것만으로는 사람이 구원을 못 얻고 유대인처럼 할례를 받고,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둘째는 영혼 구원설을 주장하는 거짓선생이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영체만 있고 육체는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당연히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음이나 부활도 부인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성도가 예수를 믿음으로 영이 구원받았기 때문에 육체는 어떤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두 가지 이단 때문에 갈라디아 교회가 혼란에 빠져 있었기에 바울 사도는 이 편지로서 복음의 진리를 확고히 하고자 했습니다.
1-2장에서 복음의 권위인 이신득의 교리에 대한 변증, 3-4장에서 복음의 진리에 대하여 이신득의의 해석,
5-6장에서 복음의 승리에 대하여 이신득의의 적용을 전하는 내용입니다.
결론적으로는 “복음은 이신득의이다...” 라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두 가지 극단적인 유형의 이단들이
복음의 본질을 위협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시대가 바뀌고, 사고의 형식이 바뀌어도 성도를 미혹하는 사탄의 유혹은 어제나 동일하게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복음의 본질이 무엇이며 기독교 신앙이 무엇인지 잘 깨달아
복음을 전할 때마다 참 복음을 전하시기를 우리주 예수 그리스도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16절)
[갈]2: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로 말미암음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알므로
1)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죄인이 심판의 두려움으로 더 깊은 죄에 빠지지 않도록 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의롭게 할 수 없습니다.
울법은 죄인들을 구속하는 멍에가 됩니다.
율법은 죄인들을 저주로 받게 인도합니다.
그렇지만 율법은 죄인들을 그리스도앞으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라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런데 믿음으로만 구원받는다고 하니까, 어떤 사람은 구약의 율법을 지킬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데 잘못된 생각입니다.
죄인이 구원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지만, 율법을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받은 성도는 천국시민이 되었으니 율법을 지키는 것이 당연합니다.
단지 우리는 율법을 지켜야만 구원을 얻는다고 하는 율법주의를 경계하는 것입니다.
실상 바울도 예수님 만나기 전에는 율법을 지키려고 부단히 애섰습니다.
바울은 학자로서 율법에 정통하였고 삶에 있어서도 율법에 충실하려고 철저한 실천생활 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의 잔당을 붙잡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예수를 만나고서는
율법을 지키려고 그렇게 노력한 것이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임을 깨달았습니다.
인간의 구원은 율법을 잘 지키는데 있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속죄의 은혜를 믿는 믿음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갈]2:16....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로써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써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고 단언합니다.
오직 하나님 만이 의롭게 하신다고 말씀하십니다.
[롬]8:33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오늘날에도 율법주의에 붙잡힌 사람들이 많습니다.
선행을 쌓고 공로를 쌓아야 구원 받는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율법은 우리들의 신앙생활에서 우리의 죄악을 발견하게 되고 죄를 깨달을 때에 회개로 인도하는 것입니다.
공로가 있어야 하는 생각은 얼마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생각인지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는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게 완전 타락한 상태여서,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의 죄 값으로 십자가에 죽이시면서 구원하신 그 큰사랑을 무효화시키는 생각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적하는 일이 됩니다.
다시 말하여 내가 구원을 받은 것은 내가 이렇게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라고 착각하여 나의 구원의 공로를 나 자신에게 돌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헌신하고, 교회에서 봉사하는 것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값없이 구원하여 주신 하나님 은혜에 감사하는 표현으로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고잭합니다.
[고전]15:10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하나님의 은혜가 참으로 감사할 때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 드려도 아깝지 않을 것입니다.
2. 오직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20절)
[갈]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사도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어야 합니다.
[요]15: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밖히었다는 것은 내 맘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처럼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야 합니다.
어떻게 닮아야 할까요,
내 마음대로 계획하고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주님의 마음을 다라 계획하고, 주님의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주안에 사는 사람입니다.
내 마음대로 안되면 주님이 왜 안도와 주시나요?
하나님이 어디 계시나요?
내 마음대로 안되고 내 생각대로 안되어도 하나님은 계시거 지켜보고 계십니다.
주님의 뜻을 발견하여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마음이 다 들어있습니다.
민수기 20장에 보면 모세를 향해 물이 없다고 원망하고,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시기를
반석에 명하여 물을 내게 하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민]20:8 지팡이를 가지고 네 형 아론과 함께 회중을 모으고 그들의 목전에서 너희는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라 하라
모세는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지 않고 지팡이로 바위를 두 번 내리치면서 물을 내게 했습니다.
이 사건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책망했습니다.
[민]20:12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내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한 고로 너희는 이 회중을 내가 그들에게 준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행동이 괘씸하다는 생각으로 반석을 내리치면서 혈기를 부렸습니다.
이 행동이 결국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혈기로 해서도 안 되고, 혈기로 하는 것은 죄요, 예수님을 또 십자가에 못 박는 것입니다.
교만한 모세와 교만한 백성들 모두 하나님에 의하여 징벌이 임하였습니다.
우리 모두들은 주님과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내 안에 역사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믿음의 조상들은 그들의 힘이 있어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지혜가 있어서 있어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잘 나서 사용하지 않으셨습니다.
[고후]13:9 우리가 약할 때에 너희가 강한 것을 기뻐하고 약한자를 들어 강한자를 부끄럽게 하심이었습니다.
[고전]1:27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1: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의 미련 한 나를 선택하였다는 것은 은혜중에 은혜입니다.
주님을 몰랐을 때의 나의 미련함이 어떠하였습니까?
세상의 악하였던 나를 택하였던 것은 은혜중에 은혜입니다.
주님을 몰랐을 때에 나의 악함이 어떠하엿습니까?
세상의 천한 것이었던 나를 택한 것은 은혜중에 은혜입니다.
주님을 몰랐을 때에 나의 천함이 어떠하였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도록 내 안에 계시는 주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여 나를 네어 드리시기를 축원합니다.
3. 오직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20절)
[갈]2:20 ......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잠시 희생하고 수고해 줄 사람은 가끔 있을 수는 있지만 그것마저 어디 쉬운 일입니까?
그런데 세상에 나를 위하여 대신 죽어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사랑하시어 자기 자신을 버리신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으로써 사랑의 대상은 먼저는 그리스도이시오,
다음은 우리가 믿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성도들이 신앙과 생활이 일치하지 않는데 가장 큰 문제로 지적합니다.
믿음은 좋은데 생활은 불신자들과 구분이 잘 안됩니다.
주일성수, 새벽기도, 교회봉사 잘하는데,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는 도무지 믿는 자의 생활이라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옛사람, 즉 자아가 죽지 않고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죽었다는 것은 나의 감정, 생각, 주장, 고집 바울 사도의 삶이 성자로 불리 울 수 있게 된 것은 20절 말씀처럼 자신은 죽고 그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주인이 바뀌는 것이며, 주체가 달라진 것을 의미합니다.
자존심 상하는 말에 대해 감정이 불끈 일어난다면 아직도 내가 죽지 않았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나의 주장과 뜻이, 의망이 좌절되었다고 기분이 나쁘다는 느낌이 들게 된 것은 아직도 내가 살아있다는 증거입니다.
모세가 하나님 말씀을 듣고 순종하지 아니하고 혈기를 부린 일에 대해 하나님께서 ‘나를 믿지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은 말씀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직 말씀을 순종하는 삶으로 변화될 때에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뜻이 이루어집니다.
[요]15: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자기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기 때문에 자기 안에 사신 그리스도의 뜻 대로만 살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사는 길은 이론이 아닙니다.
믿음은 마음에 와 닫는 이해 할 만한 생각도 아닙니다.
믿음이란 행함 속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
야곱이 그랬습니다.
모세가 그랬습니다.
다윗이 그랬습니다.
믿음은 순종의 행함을 동반하여 산한 열매를 많이 맺게 되는 것입니다.
이 은총의 선물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믿음입니다.
[히]11: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히]11: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히]11: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
믿음의 선친들은 우리들에게 믿음을 가르쳐 주십니다.
[히]11:33 그들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의를 행하기도 하며 약속을 받기도 하며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히]11:34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칼날을 피하기도 하며 연약한 가운데서 강하게 되기도 하며 전쟁에 용감하게 되어 .......
[히]11:40 이는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은즉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하며......
믿음으로 죄를 이기는 것 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은 죄를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기까지 낮아지심과 순종을 통하여 죄사함을 얻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사탄과 영적 싸움에서 이기어야 합니다.
탐심과 유혹을 물리침으로 사탄의 유혹을 물리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악한 세상을 하나님의 의로써 이기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능력있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마침내 승리하게 하실 것입니다.
영적 승리요, 영원한 승리인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갈2장15-21)
1. 오직 믿음으로 구원 받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16절)
2. 오직 믿음으로 주님과 함께 죽어야 합니다.(20절)
3. 오직 믿음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2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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