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은 유익이라.(벧전4장12-19절)
고난이란 말은 언어의 채감이 별로 좋은 말은 아닙니다.
더욱이 인간적 성향으로 볼 때에 고난이 나에게 다가올 때 좋아 할 이들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치만 옛말에 젊어서 고생은 사서라도 한다고 말하기도 하고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고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난에 담겨져 있는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을 때에는 고난이 유익되었음을 깨닫게 됩니다.
고난이 인간에게 들어온 경로는 ①하나님의 창조시대 에덴동산에서 아담의 죄악으로 들어온 죄의 싹이 고난이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서 죄악에 대한 형벌로 고난들이 들어왔음을 알수 있습니다.
하와인 여자에게는 죄악의 형벌로 산고가 있고, 아담의 인간들에게는 죄악의 형벌로 말미암아 땀을 흘려 수고하여야 먹게 되었으며,
인간에게 복을 주시려고 주신 땅은 저주를 받아 가시덤불이 나왔고, 인간은 죽어 흙으로 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난은 인간이 이 세상에 있는 한 피할 수 없는 괴로움이요, 어려움, 고통과, 슬픔들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②고난에 대하여 대부분은 죄를 범한 악인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징벌, 하나님의 심판으로 드러나는 고통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 징벌의 수단으로 고난이 임하고 그 고난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그를 믿으면 구원을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고난들에서 육체적으로 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회개하고 하나님을 알고 믿어 영적 구원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③의인에게 임하는 고난도 있습니다.
가인의 아우인 아벨과 사갸랴는 의로웠기 때문에(마23:35)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욥이 경우를 보면 의인이었지만 사단의 시기와 계략에 의하여 고난이 있는 것을 볼 때에 죄에 대한 형벌로 만 오는 것이 아님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욥의 고난을 보면 개인적인 죄의 결과라고 단정할 수 없음을 명확하게 하여 줍니다.
아벨과 사가랴와 욥의 고난에서의 분명한 것은 의인도 고난이 있다는 것입니다...
④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선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받는 고난이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에굽에서의 고난은 개인적인 죄 때문이 아니라 단지 하나님으로부터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에굽에서 종살이하고 자식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아야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에굽에서 고난 중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간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시고 그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셨습니다.
⑤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특별한 사명적 선택으로 고난을 받는 이들이 있습니다.
모세의 고난이 그랬습니다.
택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에굽시키기 위한 하나님의 큰 일을 위하여 모세를 특별히 선택하였고, 그 사명을 준비하기 위하여 광야에서 40년간의 고난을 받아야 했습니다.
다윗도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나라로 다스리기 위하여 왕으로 택함을 받았기에 십 수년간 도망 다니는 고통 속에 연단하여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워집니다...
이사야, 예레미아등의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사명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연단하시고 말씀을 전하게 하시었습니다.
이 처럼 죄로부터 오는 고난이 아니라, 사명적 선택 때문에 고난이 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⑥신약시대의 고난에 대하여서는 예수님의 고난을 들 수 있습니다.
모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본체가 하나님이신 아들 예수께서 십자가의 특별한 고난을 통하여 만민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신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커다란 은혜였습니다.
예수님의 고난은 어느 한 사람의 고난이 아니라 나의 죗값을 대신하여 죽으신 나를 위하여 베푸신 대속의 고난이었습니다.
제자들과 베드로는 주님께서 그 고난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였지만, 오히려 주님께서는 당연히 고난을 받으신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마]20:19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예수님은 고난을 피하지 아니하고 당당하게 감당하며 이기시며 말씀하십니다.
[눅]24:26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고난을 피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따르는 제자와 믿는 자들에게 고난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마]16:24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고난의 길이라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소망하는 믿는 자들 입니다..
예수를 믿어 거룩한 성도로 칭함을 받은 이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신의 죄로 말미암아 고난을 받는 육적인 신자에서 심음하고 있습니까?
자신들의 죄악으로 고통을 받으며 회개로 시간만 낭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저런 죄악의 형벌로 신음하며 회개에만 메여있는 미련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까?
그렇다고 죄악에 대한 고난을 당하며 회개 없이 고난을 당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여야 합니다....철저히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고난에 대하여 한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오늘 우리들은 고난 때문에 회개의 하는 신앙을 넘어 숭고한 고난에 나아가야 합니다..
거룩한 성도로써 주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숭고한 고난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숭고한 고난에 참여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고난의 자세를 올바로 가져야 합니다.
제자들은 오늘 말씀들과 더불어 숭고한 고난에 대하여 제가 종합적으로 말하자면 “고난은 유익합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그의 편지에서 고난에 대하여 가르쳐 줍니다.
그의 서신에서 예수님의 죽으심의 고난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벧전]4:1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고난으로 말미암아 죄가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으로 죄 사함을 받는 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죄가 멈춘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있어 더 이상 죄의 발전을 멈추도록 한다는 말 입니다...
[벧전]4:2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구원을 받은 나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고난을 받으셨습니다.
고난이 밀려올 때에 성도들이 어떤 자세를 가져야 하는 지를 베드로는 가르쳐 주십니다
1. 고난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12절)
[벧전]4:12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세상에는 이산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수염을 예쁘게 삐삐처럼 묶은 우락부락한 남자가 있습니다. 이 남자, 쫌 이상하다.
멀쩡하게 생긴 신사가 ‘어린 아이에게 다가가 메롱’ 하며 모자를 벗는다.
이 남자, 쫌 이상하다..........
왜 그러냐고 말하니 개성이니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이해하나....
이상히 여기다...라는 말은 xenivzw{xen-id'-zo : 크세니조} 충격을 받다, 낯설고 신기한 것에 의해 놀라게 하다, 이상하게 생각하다, 사람을 마비시킬 정도의 충격을 의미합니다.
마치 코로나19로 인하여 온 세상이 마비된 것 같고, 그것 때문에 모두가 다 힘든 현실인 것처럼, 난은 한 사람의 삶을 마비시켜 앞으로 나아가지도 뒤로 물러나지도 못 하게 만든다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상한 요구이십니다.
연단하려고 불 시험이 온다할 지라도....... 고난을 이상하게 여기지 말라고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고난이 오면 “왜 나만 격는 고난이냐고” 이상하게 여기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불 시험이 와도 연단하려고 하는 것이니 기꺼이 받으라는 것입니다.
연단하려고 불 시험이 와도 이상하게 여기지 말고 기꺼이 싸워 이기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에서 베드로가 전하는 말씀은 박해로 인하여 사람의 오감이 마비될 정도의 고통을 받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 때문에 마비되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본문은 고난을 말씀하다가 갑자기 마지막 때에 대하여 말합니다.
이는 마지막 때이니 믿는 성도들에게 불 시험들이 밀려온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구원을 방해 하려고 사탄이는 교회를 짓밟게 되는 불 시험들로써 성도인 우리들이 천국 가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요]12:48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내가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그를 심판하리라.
세상이 얼마나 요상합니까?... 그리고 얼마나 빠릅니까?...이단들이 얼마나 난리입니까?.
교회 밖에서 교회를 핍박하는 것들, 적 그리스도들이 난리들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인본주의와 기복신앙으로 참 진리를 왜곡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이에 병들은 현대 신앙인들은 편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좋은 것들을 받으려고 만하고 주님을 위하여는 고난을 받으려 하지 않습니다.
앞 다투어 받으려고 만 하면서 주님을 위하여 나를 양보하지 않는 것은 중병환자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셨는가?
이 한 가지만 생각하여 본다면..... 우리들의 삶은 바뀌어야 합니다.
아직도 이기적인 신앙에서 벗어나지 않았습니까?.
주님의 고난을 생각하지 못 합니까?
2.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라(13절)
[벧전]4:13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는 의미심장한 말씀을 합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라.
[요]15:20....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들과 그를 따르는 자들이 받을 고난에 대하여 먼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를 믿는 다고 고난을 받는 날이 올 때에....
그 고난 받기를 즐거워하고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하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인지 얼마나 소중하고 놀라운 일인가를 깨닫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왜 기뻐허고 즐거워하라는 것일까요?
[롬]8:17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얼마나 재미 있습니까?
저는 이 땅에서 부모에게 받은 유산을 받은 것은 없지만 훗날 하늘의 상과 영광을 많이 받아야하는 것은 포기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의 남은 고난에 기쁨으로 참여 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주님을 위하여 고난이 올 때에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무거운 마음으로 고난에 따르라는 것이 아니라 즐거운 마음으로 따르라는 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난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본 받으라는 것입니다.
[벧전]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이를 위하여....주의 일을 위하여....
주님의 남은 고난에 참여하기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영광 가운데 강림하실때에 영광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읍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기에, 즐거워하고 기뻐합니다..
3. 그리스도를 위하여 치욕을 당하면 복있는 자로다.(14절)
[벧전]4:14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그리스도의 때문에 치욕을 받으면 복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치욕을 받으면
ojneidivzw {on-i-did'-zo : 오네이디조} 조롱하다, 꾸중하다, 빈정대다, 비난받다, 욕을 먹다. 등의 의미입니다.
주로 말로 인하여 받게 되는 심리적이고 정신적인 고통을 뜻하지요.
육신적으로 힘들고 현실이 고달프면 마음이라도 편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고난은 주로 외부에서 오는 것이지만 사람의 중심,
그 영혼까지 날카롭게 찔러서 힘들게 만듭니다.
온 몸과 영혼과 삶 전체를 태우는 듯 한 끔찍한 시련이 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말씀은 너무나 야속하고 절망적인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복이란 makavrio" {mak-ar'-ee-os : 마카리오스}
행복한, 최고의 축복)이 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마]5:11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예수님 때문에 박해를 받아 고난을 받으면 행복한 사란이라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 때문에 욕먹고 박해 받는 것이 두렵습니까?
왜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 때문에 손해 보지 못 합니까?
왜 예수님 때문에 포기할 것을 포기하지 못 합니까?....
행복을 포기하지 마시기를 축원합니다.
[롬]8: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피하는 자들에게는 내세에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내세에 욕심이 없는 자들에게는 아직도 세상 욕심을 내려 놓치 못한 것입니다..
[벧전]4: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주님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세상 것들을 욕심을 내려놓고 주의 고난에 들어갈 수 있으시기를 권면합니다.
세상 것들의 욕심을 내려놓을 때에 죽지 않아요.
더 큰 유익이 있는 줄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본문의 말씀대로
[벧전]4:16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도리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시기를 축원합니다...
4. 하나님의 뜻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라.(19절)
[벧전]4:17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이제 베드로는 본문에서 고난을 말세지말에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적용합니다..
말세에 우리 성도들이 받는 고난은 죄에 대한 형벌이어서 죄가 그치고 이제는 말세를 준비하는 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벧전]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
고난도 고난 나름입니다...
죄로 인하여 받는 고난은 죄를 그치기 위한 고난이요, 하나님을 알게 하는 연단이어서 자신의 약간의 유익만 있을 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놀라운 은혜안에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고난은 하나님의 일을 위한 고난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일(사명)의 수행에 있어서의 고난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고 서는 박해자들이 그들의 박해할 권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허락하에 박해자들에 오고, 그 박해로부터 오는 고난은 장차 영광을 위한 고난인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헌신하다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맡겨진 영혼들을 위하여 전도하다가.
고난을 받으며 박해를 받으며 영광을 돌리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벧전]4:19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 또한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지어다.
이렇게 고난을 받으면서 선을 행하면서 내 영혼을 하나님께 의탁하라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고난은 잠깐입니다.
[벧전]5:10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고난을 받으면 우리의 터가 견고하여 집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고난은 유익임을 깨달았습니다.
감사함으로 연단을 받으며 즐거움으로 감사하며 온전한 믿음으로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고난은 유익이라.(벧전4;12-19)
1. 고난을 이상히 여기지 말라(12절)
2.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즐거워하고 기뻐하라(13절)
3.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으로 자원하여 들어가라.(14절)
4. 하나님의 뜻대로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라.(19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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