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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5. 니고볼리에서 드로아 (2,3차 전도 여행 지역)
박진숙 2025-03-20 추천 0 댓글 0 조회 12

5) 니고볼리에서 드로아 (2,3차 전도 여행 지역)

 

 (1) 지명 연구

 

  ① 니고볼리

 

  니고볼리(Nikovpoli" : nik-op'-ol-is : 니코폴리스)승리의 성읍이라는 뜻이다. 현재 지명은 니코폴리(Nikopoli)이다.

 

  ② 드로아 <2,3차 전도 여행 참조)

 

 

 (2) 역사적 배경

 

  ① 니고볼리

 

  `니고볼리'란 이름의 도시는 길리기아에도 하나 있고, 마게도냐의 드레이스(Thrace)에도 있고, 에피루스(Epir\us)에도 있다. 이 니고볼리는 이오니아해의동안에 있던 에피루스를 지칭함이 틀림없다(어떤 학자는 마게도냐의 `드레이스'라고 한다). 그것은 암브라키아만의 서북안에 위치하고 있었다. 바울은 여기서 겨울을 나기로 작정하였고, 또 디도를 만나겠다고 기별하였다(3:12). 이 성읍은 BC 31년 아구스도가 안토니에게 승리한 후 그것을 기념하기 위해, 또 헬레닉(Hellenic) 생활의 새 중심지로 할 목적으로 창설한 것으로서, 황제의 원조 하에 급속히 융성하여 정치상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4년마다의 경기는 악티안 아폴로(Actian Apollo)의 명예를 위해 제정되어 희랍의 다른 네 경기에 끼이게 되었고, 또 에픽테토스(Epiktetos, 60-138)의 교훈은 더욱 이 성읍을 유명하게 하였다. 바울은 아마 이 곳을 서부 희랍 교화의 좋은 중심지로 보고 그의 제2차 구금 직전까지 여기에 머물러 있었을 것이라 한다. 이곳은 로마의 식민지로 되어 아카르나니아(Acarnania), 에톨리아(Aetolia) 등의 시민을 이주 시켰다. 니고볼리의 유적은 `팔레오프레베사'(Palaeoprevesa)라 불리 우는데, 프레베사(Prevesa)의 북쪽 5의 아르타만(옛날의 암브라키아만)에 있다. 성채(城砦, 아크로폴리스) 이외에 두개의 극장과 43지점으로부터 성읍으로 물을 끌어온 수도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밖에 비잔틴 시대의 교회의 터도 보인다.

 

  ② 드로아 <2,3차 전도 여행 참조)

 

 

 (3) 성경 본문

 

(딛 3:12) 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 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바울과 그 일행은 63년 겨울을 이오니아 동쪽 연안에 위치한 성읍인 니고볼리에서 함께 보냈다. 디도서에 의하면(3:12), 바울은 그레데 섬의 디도에게 그 해(63) 겨울을 함께 보낼 수 있도록 겨울이 되기 전에 속히 올 것을 지시하고 있다.

  니고볼리에서 겨울을 보낸 이후, 로마 당국에 의해서 긴급 체포된 시점까지 바울의 나머지 순방 여정에 대해서 알 수 있는 정보는 없다. 바울의 목회 순방 여행은 64년 후반기 어느 시점에 갑자기 끝이 났다.

  폭군 네로에 의한 로마제국의 기독교 박해가 시작된 것이다. 역사적으로 647월에 로마에서 대화재 사건이 발생했다. 로마의 대 화제 사건이 도화선이 되어 폭군 네로의 기독교 박해가 본격화된 것이다.

  우리는 디모데후서에서 바울이 체포된 장소를 암시하는 구절을 발견할 수 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딤후 4:13)고 편지하고 있다.

이는 바울이 체포될 당시 소아시아에 위치한 드로아에 있는 가보의 집에 자신의 개인 짐을 두고, 그 집을 근거지로 삼아 각 지역으로 순방 목회 활동을 하고 있었다는 정황을 암시한다.

  드로아에 머물고 있던 기간 중에 바울은 로마 당국에 의해서 긴급 체포되어 로마로 압송되었다는 추정을 가능하게 하는 기록이다.

 

 

 (4) 동역자들

 

(딤후 4:11~13)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① 누가

 

  누가는 의사였다. 골로새서 4:14, “사랑을 받은 의원 누가”. 또한 누가는 역사가였다. 누가는 누가복음과 초대교회의 역사인 사도행전을 기록하였다.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라는 내증은 없으나, 사도행전 자체가 저자는 누가임을 확신케 한다. 외증으로는 무라토리안 정경(Muratorian Canon, A.D. 170), 초대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 c.325.)는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라고 하였다.

  누가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다. 누가는 의사로서 사도 바울의 전도에 동참하였고, 사도 바울이 제1차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누가도 같이 투옥되었다(4:14 ; 24). 그는 사도 바울의 제2, 3차 선교여정에도 동행하였을 뿐만 아니라(16:10-17; 20:5-21; 27:1-28:16; 23 ; 4:10-27), 바울의 이 옥중에서 서신들(, , , )을 기록하는 일에도 비서역을 감당하면서, 또한 의사로서 건강을 보살폈다.

 

  ② 두기고

 

  두기고(Tychicus)는 소아시아인 아마도 에베소인이었다(20:4). 바울의 사랑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요, 협력자였다(6:21;4:7).

  바울에게는 신실 되고 충성된 목회자 디모데, 전도자요 선교사인 마가, 의사요 사학가인 누가, 목회자 디도, 신실 되고 충성된 일군들인 두기고. 에바브로 디도. 실라. 마가의 어머니 마리아. 뵈뵈 같은 여성도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같은 부부 등이 있어서 하나님의 일을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다. 사도 바울은 이 모든 사람들을 가리켜 하나님의 일을 같이 하는 동역자들(fellow workers)이라고 하였다.

  두기고는 고린도교회가 모금한 구제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하였다. 바울은 디도와 아마도 두기고로 하여금 고린도교회가 모금한 거액의 구제금을 예루살렘교회에 전달케 하였다(고후 8:16-24). 그만큼 두기고는 신실한 일군이었다.

당시 팔레스타인 전역에는 로마 제4대 글라우디오(Claudius) 재위 제4년부터 4년간(A.D. 44-47) 큰 흉년이 들었다. 그때에 안디옥교회, 고린도교회, 마게도니아교회 등의 온 성도들은 힘껏 구제 헌금하여 예루살렘교회에 보냈다(11:27-30, 15:26-27; 고전 16:1-3)

  두기고는 바울이 옥중에서 쓴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를 에베소교회와 골로새교회에 전달한 자(Messenger)이다.

에베소서 6:21,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너희에게도 알리려 하노니 사랑을 받는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골로새서 4:7-9.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려주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이라 내가 그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신실하고 사랑을 받는 형제 오네시모를 함께 보내노니 그는 너희에게서 온 사람이라 저희가 여기 일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두기고는 그레데 교회의 어려운 일들을 담당하기 위하여 파송을 받았다. 이는 디도를 불러온 후 디도의 직무를 대신 담당케 하기 위함이다.

  디도서 3:12. “내가 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그때에 네가 급히 니고볼리로 내게 오라 내가 거기서 겨울을 지내기로 작정하였노라.”

  두기고는 사도 바울의 제1차 투옥 시에도, 2차 투옥 시에도 사도 바울과 같이 있었다(6:21; 4:7-9;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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