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지명해설

  • 자료실 >
  • 성경지명해설
3.3.14. 로도 • 바다라
박진숙 2021-01-19 추천 0 댓글 0 조회 229

14) 로도 바다라

 

 

  (1) 지명 연구

 

    ① 로도

 

       로도(@Rovdo" : hrod'-os : 흐로도스)장미라는 뜻이다. 현재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② 바다라

 

         바다라(Pavtara : pat'-ar-ah : 파타라)통역이라는 뜻이다. 현재에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현재 지명은 겔레미쉬(Gelemiş)이다.

 

 

  (2) 역사적 배경

 

    ① 로도

 

    소아시아의 서남 해안으로부터 19지점에 있는 섬(로도스)인데, 현재는 희랍 영토로 되어있다. 도데카네스군도 최대의 섬인데, 편도(扁挑)처럼 생겼다. 길이 84, 38, 면적 1,404(제주도 1,840)인데, 같은 이름의 수도 로도스가 동북안에 있고, 고대 희랍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고 번영한 도시 중 하나였다. BC 412년부터 BC 411년까지 로도는 아덴 동맹에 가입하여그 제도도 민주적이었다. 아덴과의 전쟁(BC 411-407)에는 내부 사정에 몰려 세 도리아 도시 국가, 즉 이알류소스(Ialysos), 린도스(Lindos), 카메이로스(Kameiros)와 동맹(Synoecism)을 결성하고, 로도와 새 동맹 도시의 수도로 되었다. 물론 본래의 도시 국가는 제각기 최대한의 자치가 허용되어 있었다. 로도가 차지한 유리한 지리적 위치는 잘 이용되어 통상 세계에 있어서 빛나는 지위를 구축했다. BC 2세기에는 그 번영이 정점에 달했으며,BC 189년 로마의 식민이 행해진 이후 가리아(Caria), 루기아(Lycia)의 대부분에 있어서 여왕의 지위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그 선대(船隊)는 고대의 세계에 있어서 가장 명성을 떨친 것 중 하나이며, 그 해운법은 널리 영향을 끼쳤다. 로마의 통상 이윤은 이 유력한 경쟁자에 의해 크게 위협을 받았으며, BC 166년 로마는 가리아와 루기아 등 제도시의 독립을 선언하고, 델로스(Delos)를 자유항으로 하고, 로도의 세력을 축소했다. 그러나 미트라데스와의 제 1차 전시 로도는 로마에 충성을 다한 죄로 가리아에 있어서의 소유를 회복시키고 그것을 갚았다.

로마의 내란 때에는 로도는 가이사에 가담했으나, 동쪽의 대부분은 폼페이우스(Pompeius)에 가담했다. 그 때문에 재앙을 입어 마침내 단순한 지방 도시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바울 시대에는 자유시로서의 지위는 지속되고, 그 아름다운 항구, 성벽, 가로, 시장 등은 옛날대로였다. 바울은 제3차 전도 여행시 드로아에서 가이사랴로 돌아가는 도중 이 항구에 들렀다(21:1). 그것은 이 항로에서는 통상 기항하는 항구였기 때문이다. 로도에는 유대 식민도 많고, 로마인은 그들에게 호감을 가지는 편지를 여기에 보내고 있다(마카비 115:23).

구약에서는 두로와 교역한 백성 중에 로도 사람들을 인용하고 있다(27:20). `드단'`로도'라고 수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민족표의 로다님(대상 1:7)도 로도의 주민을 가리킨다고 주장한다(병행 기사 창 10:4에서는 `도다님'). 로도 항 입구에 건립되었던 태양신의 유명한 거상(巨像, 코로사스)은 높이 32m나 되는데,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의 하나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것이 서 있는 것은 B.C. 280-224년의 짧은 기간이었다. 오랫동안 로마인에게 정복되지 않고 있던 로도 사람들이 A.D. 1310년 경 섬을 점령한 성 요한의 기사(騎士)들에게 이끌려 토이기 군에 대항했으나, 마침내 1522년 말타 섬에 이주한다는 조건으로 항복하고, 그 후부터 토이기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② 바다라

    소아시아 남서부에 있는 루기아의 요항인데, 크산토스(Xanthus, 터키어로는 Koca Seki) 하구의 동남쪽 11지점에 있었다. 이 유역은 루기아 최량(最良)의 부분이며, 일찍부터 바다라 통상 도시로서 번영하였다. 지중해의 이 지역은 편서풍(특히 가을에) 지대로서 에게 해 또는 이탈리아로부터 베니게나 애굽으로 항해하는 배는 종종 바다라에서 모험적으로 바다를 곧바로 횡단하는 일이 있었다.

    루기아 지방은 헬라인에 의해 식민되었는데, B.C. 3세기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시 부터 헬라어를 쓰게 되었다.

바다라는 전에 루기아 도시 동맹의 맹주로서 중요한 성읍이었다. 그 수호신은 아보로와 절충하여 아폴로 바다레우스(Apollo Patareus)로 되었으며, 유명한 신전을 가지고 있었다. 고지(古址)`겔레미슈'(Gelemish)라 불리우는 마을에 있으며, 극장, 공중욕장, 성벽, 신전 등이 보인다.

 

 

  (3) 성경 본문

  

 (행 21:1-2) 우리가 그들을 작별하고 배를 타고 바로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다가

 

​     밀레도를 출항한 바울의 일행은 고스로 가서, 이튿날 로도에 이르러, 거기서부터 바다라로 가서, 베니게로 건너가는 배를 만나서 타고 가게 되었다.

 

 

                                    
                                              
바울이 도착하였다는 린도스항 (바울도착 기념교회)

 

                     
                           
바울이 도착하였다는 린도스항 (바울도착 기념교회)

 

 

자유게시판 목록
구분 제목 작성자 등록일 추천 조회
이전글 3.3.15. 구브로를 바라보고... 박진숙 2021.01.19 0 260
다음글 3.3.13. 고스 박진숙 2019.08.31 0 467

573874 TEL : 063-464-8186 지도보기

Copyright © 울타리교회. All Rights reserved. MADE BY ONMAM.COM

  • Today31
  • Total71,386
  • r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