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드로아
(1) 지명 연구
드로아( tro-as' : 트로아스)는 ‘관통’이라는 뜻으로 Tros<트로스> (드로아인)에서 유래 되었다. 정식 명칭은 ‘알렉산드리아 드로아’ 이고, 소아시아 서북부의 한 지방으로 프로폰트 해(Propontis, 지금의 마르마라 해 Marmara Denizi)와 헬레스폰트(Hellesphont) 해협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다. 현재 지명은 달얀(Dalyan)이다.
(2) 역사적 배경 (2차 전도여행 참조)
소아시아의 무시아(Mysia) 서북안에서 마게도냐에 건너가는 관문이다. 오늘날은 터어키 영의 에스키 스탄불(Eski Stanbul)이라 하는 황폐한 고지(古地)에 불과하다. 유명한 트로이(Troy)의 남쪽 25㎞ 지점에 있는데, 원래는 지방의 이름이었으나 후에 성읍의 이름으로 되었다. BC 310년 경 안티노고스(Antigonus)가 건설하고, `안티고니아 드로아'라 부르고, BC 300년 경 류시마코스(Lysimachus)가 확장하고 알렉산더 대왕을 기념하여 `알렉산더 드로아'라 명령하였다. 아구스도의 치세에 로마의 식민 도시로 되고, 완전한 이름은 Colonia Alexandria Augusta Troas라 하였으나, 일반적으로는 생략되고 단순히 `드로아'(Troas)라 불리 웠다. 로마 시대에는 아시아와 마게도냐를 잇는 요항으로서 번영하였고, 신전, 극장, 목욕장, 또 특히 트라야누스(Trajanus) 황제가 만든 도수교(舊水橋) 등의 유물이 발견되어 그 옛날의 번영을 말해 주고 있다. 고지(古地)는 떡갈나무 숲에 덮여 있으나, 주위는 9.6㎞에 달한 성벽은 아직도 군데군데 남아 있다. 대리석의 원주(圓柱)와 그 밖의 부분은 이스탐불(Istambul)의 발리데(Yeni Valideh Jami) 이슬람교 회당을 건립하기 위해 가져갔다.
드로아 항구는 마게도니아와 그리스를 잇는 에게 해(Aegean Sea)의 중요한 항구도시들 중 하나이다(행 16:8, 20:5, 고후 2:12). 드로아는 지중해 연안 소아시아 북서쪽 항구 도시로서 이곳을 통하여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간다. 드로아에서 마게도니아까지 약 160km 떨어진 곳이다. 드로아는 에베소보다도 인구가 많았던 번창한 대 항구도시였다.
(3) 성경 본문
(행 20:6~12)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그 주간의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우리가 모인 윗다락에 등불을 많이 켰는데 유두고라 하는 청년이 창에 걸터 앉아 있다가 깊이 졸더니 바울이 강론하기를 더 오래 하매 졸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 층에서 떨어지거늘 일으켜보니 죽었는지라 바울이 내려가서 그 위에 엎드려 그 몸을 안고 말하되 떠들지 말라 생명이 그에게 있다 하고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랫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 떠나니라 사람들이 살아난 청년을 데리고 가서 적지 않게 위로를 받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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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무교절 후에 마케도니아의 빌립보(네압볼리항)에서 배편으로 떠나 닷새 만에 아시아의 드로아에 상륙하였다. 드로아에서 바울은 예루살렘 귀환여행의 동행자들과 합류했다. 드로아에서 이레를 머물렀는데, 기간 중 안식 후 첫날(주일)에 모든 형제들이 떡을 떼기 위해 모였다. 드로아에 있는 성도들이 다 한 자리에 모여서 음식을 함께 나누어 먹고, 바울의 강론 설교를 들었다.
밤늦은 그 시각, 설교를 듣던 중에 삼층 난간에서 졸던 유두고라는 청년이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바울은 그를 곧 살려 내었다. 유두고를 살려낸 다음에도, “올라가 떡을 떼어 먹고 오래 동안 곧 날이 새기까지 이야기하고”(행 20:11) 아침이 되어 드로아를 떠났다.
드로아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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