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 후에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욥 42장 1-6,10절)
사람이 사물을 보는 방식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사람의 오감에서 오는 감각으로 아는 방식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적인 관점에서 아는 방식으로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뜻을 나타내고 있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행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대로 판단하여 행합니다.
모든 사람은 본성적으로 자기 자신을 신뢰하려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자신의 관점을 신뢰하고 그것을 의지고 그 신뢰함을 따라 행하게 됩니다..
자기 신념에 따라 자신이 바로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다른 이들이 자기와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사실을 받아 들이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도 자기와 똑같이 보고 있다고 믿는 것이 일반적인 것 입니다.
그런데 실제는 사람의 시각이란 사물의 수 만큼이나 다양하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생물을 종류가 다양하게 창조하셨듯이 사람의 관점도 다양하게 창조하셨가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의 관점이란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가 보는 것이 유일하고 옳다고 생각하려는 경향을 갖고 있으나, 실제는 내 관점도 때와 장소에 따라 수시로 바뀌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기준으로 세상을 보는 사람은 자만하여 감사가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의 잣대로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면서도 감사가 없었습니다.
그들의 감사는 자신이 의롭다는 사실을 자랑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진정한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생각과 관점을 기준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욥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고, 그는 정직했고, 악을 행하지 않는 자 였습니다.
욥이 어느 날 엄청난 재난을 만났을 때도 하나님을 찬송했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일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기 때문일까?........아니었습니다.
욥은 하나님에 대하여 지식적으로나 부분적으로만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들어서 알고는 있지만 아는 것은 말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부분적으로만 알고 들어서만 알면서도 경외하며 범죄하지 않고 바르게 살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
여전히 자기 생각과 가치를 기준으로 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욥은 혹시 자신이나 자기 자녀들이 범죄하지 않을까 염려했습니다.
그것은 두려움이었지 진정한 감사가 아니었습니다
재난을 만난 욥은 겉으로는 하나님을 찬양했으나 속으로는 하나님의 하시는 일이 이해가 안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아니했다고 생각했습니다(욥6:10)
그는 하나님께서도 자신이 악하지 않은 줄을 아신다고 했습니다(욥10:7)
욥은 자신이 의롭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욥 32 : 1)
그는 그가 죽기 전에는 자신의 생각을 놓치 아니하리라는 소신을 가졌던 것입니다.
[욥]27:6 내가 내 공의를 굳게 잡고 놓지 아니하리니 내 마음이 나의 생애를 비웃지 아니하리라
욥은 자신의 의와 자신이 알고 경험한 것들로 자신의 고난을 해결하려 하지만 그것들로는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해피엔딩으로 끝이 종았던 이유를 오늘 본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욥이 고난 후에 욥에게 드러난 신앙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된 것 입니다.(2절)
바로소 욥기서 마지막에 와서야 한 말이 뭔가를 알았던 것입니다.
[욥]42:2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욥은 하나님 앞에서와 친구들 앞에서 함부로 논리를 펼치기도 하였던 욥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첫걸음이 시작되고 았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으로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전지전능하신 분 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이 아니고는 아무것도 안 됩니다.
이제 나는 하나님이 아니고는 한 없이 부족합니다....를 깨닫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 굴복합니다.... .
욥은 상황의 이유를 먼저 묻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다시 보았습니다.
우리의 결국은 하나님의 통치 안에 들어가야 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 통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통치가 시작되어 고난의 폭풍 가운데 나타나셔서 창조 질서의 주권자임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욥의 회복은 하나님이 갑절의 보상으로 회복되는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로써 하나님이 질서를 말씀으로 바로 잡는 회복의 행위인 것 입니다.
나의 고난에서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시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주권적으로 나에 대하여 일하시어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모두 하나님은 절대주권의 하나님,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로 알아 인정하시는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욥이 고난 후에 욥에게 드러난 신앙은 무엇입니까?
2. 하나님의 이치를 헤아림이 드러납니다.(3-4절)
[욥]42:3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1)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이치라는 말은 hx;[e {ay-tsaw': 에짜} 조언, 충고 라는 말입니다.
하나님 이치를 깨닫지 못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도 없이 자신의 능력 밖의 일들에 대해서 성급하게 판단하고 이해함으로써
무식하게도 하나님의 계획과 충고를 가리웠던 사실을 오히려 질책하고 있는 것입니다.
욥과 그의 친구들은 무지한 말로 하나님의 이치를 가리려 하였습니다.
인간의 지혜가 있다하지만 우리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이치를 깨닫지 못 합니다.
[전]8:7 사람이 장래 일을 알지 못하나니 장래 일을 가르칠 자가 누구이랴
[전]11:5 바람의 길이 어떠함과 아이 밴 자의 태에서 뼈가 어떻게 자라는지를 네가 알지 못함 같이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네가 알지 못하느니라
욥은 자신이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에 대해 놀라움을 가지고 있었던 욥은 이제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행사들은 너무도 기이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떠들었던 친구들과의 대화가 얼마나 부끄 러운 일이었는가를 뉘우치는 것입니다.
2)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욥의 반응은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행사가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는 기묘한 일이기 때문에, 그것을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행위였는가를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스스로가 인지하였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40:5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행하신 기적이 많고 우리를 향하신 주의 생각도 많아 누구도 주와 견줄 수가 없나이다
내가 널리 알려 말하고자 하나 너무 많아 그 수를 셀 수도 없나이다.
욥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이 자신의 능력 밖의 일들에 대해서 성급하게 판단하고 이해함으로써 하나님의 계획과 충고를 가리웠던 사실을 스스로에게 질책하고 있습니다.
만물에 대한 하나님의 행사가 너무도 기이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주의 이치를 알지 못하고 내 생각과 내 방법만 믿고 함부로 행동하는 것이 위험합니다.
주의 일을 이루기보다 주의 일을 파괴하는 자리에 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유아적인 신앙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눈으로 뵙는 체험적인 신앙의 단계에 들어서기 바랍니다
우리는 삶의 현장에서 삶의 현장만 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전지하심이 우리에게 작동되기 때문인 것 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이 나에게 작동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고난에 대하여 우리들이 생각하기를 하나님의 생각과 다를 때가 있습니다.
① 하나님은 택함을 받은 나를 부르시는 방법으로 나에게 한 사건을 나에게 주십니다.
그 사건 가운데서 하나님은 부르시는데, 나는 그것들 고통이라고 부릅니다. 우리는 그 사건을 보며 떨며 두려워하는 어리석음이 있습니다.
② 하나님은 나를 만들기 위하여 모난 곳들을 깎으실 때 하나님은 사랑이라고 말하시지만, 나는 그것을 나는 고난이라고 부릅니다.
③ 하나님은 나를 너무 사랑하시기에 낮은 마음과 넓은 마음을 갖게 하시려고 좁은 길 협작 한 길을 주시면서
하나님은 은혜라고 하시지만, 나는 그것을 연단이라고 부릅니다.
④ 사탄이 나를 시기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려고 나에게 물질을 주시어 세상에 빠지고 세상의 즐거움에 취해 있을 때
하나님은 시험이라고 부르지만 나는 그것을 축복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고 눈에 보이는 것들은 온 갖 세상의 것들만이 보이기에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며 사는 것이 습관이 되어,
더욱이 하나님의 일까지도 세상의 기준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의 뜻을 오해 합니다.
더욱이 세상의 일들이 하나님의 손에 달려있다고는 상상도 하지 못 한다면 우리는 잘 못 살고 있는 것입니다...
2) 주를 알기를 간절히 소망하여야 하는 것 입니다.
[욥]42:4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알다라는 말은 ‘[d'y: {yaw-dah' : 야다} 단순히 “지식을 알다”가 아니라 “관계 안에서 체험적으로 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욥이 고난 중 처음 주장한 것은 나는 무죄합니다. 하나님이 설명하셔야 합니다.였습니다.
고난 후에 욥이 하나님 앞에 고백하기를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라고 말합니다.
욥처럼 “자기 생각이 아닌,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신앙이 흔들리는 이유는 상황을 분석하려고 할 때이지 하나님을 바로 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회복은 ‘하나님에 대하여 알게 되어야“ 회복이 되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다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욥은 고난을 통해서 하나님의 깊은 섭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적하시는 계획과 행사는 어떠한 것이더라도 끊거나 이루지 못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목적하신 바를 반드시 성취하시며, 계획하신 것은 완전하게 실행하실 것임을 믿어야 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큰 일에는 어떠한 조건이나 한계가 없이 이루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과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짐을 믿고, 순응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듣기만이 아니라 이제는 주를 뵈어야 합니다 .(5-6절)
[욥]42:5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최고의 은혜는 듣고 보아 마음에 전달하는 지혜입니다.
인간의 지혜가 소리와 보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1) 주를 듣고 보고 알고 마음으로 믿어지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렘]49:20...여호와의 의도와 데만 주민에 대하여 결심하신 여호와의 계획을 들으라 양 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고 다니며 괴롭히고 그 처소로 황폐하게 하지 않으랴
하나님은 백성들에게 여호와 하나님의 계획을 먼저는 들으라 하시며 말씀을 하십니다.
우리는 내 계획을 하나님 앞에 알리고 그대로 이루어 주시기를 바라며 기도하며 신앙생활을 하였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을 보게 되면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보이게 됩니다.
만일 내 뜻과 하나님의 뜻이 일치되지 않을 때면 내 뜻을 먼저 거두어 들이고 회개하여야 합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여야 합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을 우리의 심령의 성전에 모시어 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적으로 만나고 그의 사랑을 깨달아 진정한 교제를 나누게 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을 직접 대면함으로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어 그의 뜻을 헤아리게 되는 것입니다.
가면 갈수록 세상은 각박하고, 가면 갈수록 타락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 시대에 나의 영혼은 보장 받겠다고 자만하지 말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듣고 보아야 만이 나의 영혼이 살고, 영혼이 살아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시기를 바랍니다.
2) 스스로 거두어 들이고 회개하여야 합니다.(6)
[욥]42:6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자신의 잘 못들은 자신 스스로 거두어 들여야 합니다.
거두어들이고...'라는 말은 sa'm; {maw-as' : 마아쓰} 단호히 거절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즉 욥이 자신의 어리석은 말과 행동을 싫어하며 스스로 거부한다는 뜻입니다.
과거에 대한 뉘우침을 표현한 것입니다.
[눅]5:31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나니
[눅]5:32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한 것은 회개란 단순히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하다..라는 말은 נָחַם {naw-kham' : 나함} 참회하다, 뉘우치다는 일반적인 죄 회개가 아닙니다.
자기중심적 신념을 철회하고 하나님 중심의 신앙으로 대 전환하는 온전한 회심입니다.
아브러함이 자신의 모습을 고백할 때에
[창]18:27............. 나는 티끌이나 재와 같사오나 감히 주께 아뢰나이다
철저하고 완전한 회개로 애통하며 스스로를 거두어 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크심 앞에서 자신을 다시 새롭게 정렬하는 행위입니다.
중심으로 회개할 때 영적인 눈이 열리어 분별력이 생기고, 잃었던 평안과 기쁨이 회복됩니다.
티끌과 재를 뒤집어 쓴다는 것은 나의 목적 달성을 위한 억지 회개가 아닌 진정한 회개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오늘도 나의 실체를 보고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정한 마음과 정직한 영으로 주께 나아오기를 기대하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고난 후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있으리라를 깨닫습니다.
[욥]42:10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전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
욥의 갑절의 회복은 완전한 회복이 아닌, 장차 올 새 창조의 예표인 것 입니다.
욥은 지상에서 회복될 만한 모든 것들을 이상적으로 회복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하여 더 바랄 만 것이 없는 하나님 나라를 모형으로 보여 주시는 것입니다.
욥의 고난을 통하여 이미 알게 되는 우리들에게 주시는 은혜는 고난을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고자 원하십니다.
실제적인 고난의 탈출이 우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회복되는 놀라운 은총을 입으시기를 바랍니다.
부활과 새 창조의 완성을 위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욥의 고난과 회복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모습을 보며 그의 뜻에 합당한 하나님의 나라가 있는 것을 믿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고난 후에 드러나는 하나님 나라(욥42장1-6,10절)
1.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2절)
2. 이치가 아니라 헤아리어야 합니다 (3-4절)
3. 듣기만이 아니라 이제는 주를 뵈어야 합니다.(5-6절)
고난 후 하나님 나라의 영광이 있으리라.(10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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