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있는 청지기로 칭찬을 받으라. (눅16장1-13)
하나님은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지으시어 세상을 밑기시고 다스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세상을 맡아 다스리는 맡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일부들을 밑은 사람들이 자기의 것으로 주인행세를 하는 것입니다.
사실은 주인이 아니라 일시적으로 맡은 청지기인데 말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이 땅을 살아가는 모든 인간은 청지기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청지기란 oijkonomevw {oy-kon-om-eh'-o : 오이코노메오} 관리하다,
주인의 집이나 소유를 관리하다'(집, 즉 소유), 청지기가 되다, to manage
가정 일을 관리하다,
청지기는 주인의 재산이나 소유를 맡은 종이지 주인이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청지기는 주인의 뜻을 깨달아 주인이 기뻐할 만한 일들을 하는 법 입니다.
주인이 수고의 댓가를 주게 되어 받게 됩니다.
[눅]16: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옳지 않은 청지기라 하는데 주인이 그 청지기를 칭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진실하지 못한 나쁜 청지기 인 것입니다.
그러나 칭찬을 받았습니다.
비록 옳지 않은 청지기일지라도 일을 지혜있게 하였다는 것이 칭찬의 이유인 것입니다.
이 청지기의 칭찬 받은 이유인 지혜를 깨달으며 은혜받으시기를 축원합니다.
1, 나는 청지기 임을 깨달아야 합니다.(1절)
[눅]16: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이 청지기에게는 주인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동안 그 주인은 이 청지기에게는 있으나 마나한 존재,
아무 의미 없는 존재였습니다.
주인이 지금까지 한번도 그가 하는 일에 간섭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인을 잊고 내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갑자기 주인이 계산하자고 합니다.
그때 "아차 내게 주인이 있었구나! 이것이 내 것이 아니구나!"하고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이 내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이 땅에 내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내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돈이 내 것입니까? 건강이 내 것입니까? 지혜가 내 것입니까?
돈도 잠깐 나에게 맡겨져 있는 것 뿐 입니다.
지금 건강한 것 같지만, 건강과는 점점 멀어져 갈 것입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총명한 사람도 가는 세월 앞에서는 다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청지기는 이 모든 것들이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음을 깨달은 것입니다.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고 하는 것을 얼마나 확실하게 인정하고 살아갑니까?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을 깨닫는 것이 지혜입니다.
좀 오래된 유행가 중에 이런 노래가 있습니다.
MG세대와 현대인들을 가장 매혹시키는 가치관이 '내 인생의 주인은 나다'는 것입니다.
현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이 사상에 물들어 있습니다.
인간을 만물의 으뜸으로, 최고로, 주인으로 생각합니다.
그리스도인들 조차도 이런 생각에 빠져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무서운 착각입니다.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고 살고 있습니까?
그런데 문제는 내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얼마나 인정하고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얼마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입으로는 하나님을 주인으로 고백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모든 것에 대하여 자신이 주인인 것 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을 가리켜 무늬만 그리스고인이요, 실천적 무신론자...라고 합니다.
관념 속에, 이론 속에, 기도할 때만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을 인정하지만,
실제 행동 속에서는 하나님과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울은 그의 제자인 디도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런 말씀이 하십니다.
[딛]1:16 그들이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
그레데 사람들은 생각과 행동, 관념과 삶, 말과 행위가 일치하지 못한 자들을 책망합니다.
그것이 온전한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판단 기준은 우리의 말에 있지 않습니다.
[고후]5:10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요한계시록에도 보면, 행위대로 심판하신다는 말씀이 수 차례 나옵니다.
어떤 말을 했느냐보다 중요한 것은 어떤 행동을 했느냐 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십니까?
백 마디 말보다 한 가지 행동으로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주인의 샘할 때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2절)
[눅]16: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이 청지기는 주인이 "네 보던 일을 셈하자"고 했을 때,
그 동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자신의 삶을 점검하고 때를 따라 반성했다는 것이 지혜있는 청지기의 모습니다.
1) 네 보던 일을 셈하라(2절)"
주인이 청지기에게 그 동안 하던 일을 셈하라고 명합니다.
이 청지기는 셈하여 심판을 받는 종말론적 시간에 그는 대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청지기에 대하여 윤리적 선입견으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종말론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이 사람이 청지기 노릇을 하다가 어느 순간 자율의 한계를 넘어 주인의 뜻을 어기고
돈을 멋대로 관리하여 주인의 재산을 낭비해버렸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주인이 책망을 합니다.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된 것이냐고 묻습니다.
네 보던 일을 셈하라, ....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명합니다.
이렇게 주인의 명령이 떨어질 때에 이 청지기는 냉철하게 현실을 판단하게 됩니다.
[눅]16: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사람들의 모든 일상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것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 동안 숱하게 주인을 속여 진실하지도 못하고 성실하지도 못한 청지기였습니다.
이를 깨달은 것입니다.
이 불의한 청지기라도 현실을 직시하고 깨달은 바를 수정하면
새로운 아름다운 미래가 열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음미되지 않는 인생은 살 보람이 없다".
평가되고 반성되지 않은 인생은 살 가치조차 없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인생을 진지하게 점검하며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지 않으면, 바르게 살고 있는지 알기가 어렵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성찰하지 아니하면 삶의 방향, 삶의 목적까지도 상실하기 쉽습니다.
히브리사람들의 지혜서인「탈무드」는 인간을 평가하는 기준에 세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히브리말로 '키소, 코소, 카소'라는 말이 있습니다.
첫째인 키소는 돈을 넣는 주머니를 말 합니다.
돈을 어떻게 벌고, 어디에 어떻게 쓰느냐가 그 사람을 평가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두 번째 '코소'는 술잔으로, 향락을 의미합니다.
무엇을 즐기고 있느냐? 무엇에 빠져 있느냐?
무엇이 내 마음을 빼앗아버렸느냐? 이것이 그 사람을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세 번째, '카소'는 사람의 노여움을 가리킵니다.
자기를 얼마나 억제할 수 있었느냐 하는 인내력을 말합니다.
그 때 그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때 그 길로 가지 말았어야 했는데…
후회하는 노여움의 정도가 인격을 평가하는 기준이 됩니다.
2) 셈에 대비하여 할 일을 대비하여야 합니다.(4절)
[눅]16: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오늘 본문의 청지기는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고 "잘 못 살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자신의 인생이 실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른 것이 실패가 아니라 "자신이 주인인 줄 착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했다"는 것이
실패였습니다.
남의 것을 가지고 자기의 유익과 욕심을 채우는데 모두 사용했다는 것이 잘못된 것입니다.
누가복음 12장에 보면 "어리석은 부자에 대한 비유가" 나옵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가 농사를 지었는데, 풍년이 들었습니다.
현재 가지고 있는 곡간으로는 이 모든 것을 다 보관할 수가 없었습니다.
곡간을 더 크게 지어 곡식들을 곡간마다 가득히 쌓아 놓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눅]12: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그 때 주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눅]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부자가 왜 어리석은 자입니까? 이 부자가 왜 실패한 사람입니까?
그것이 자기 것으로 알았다는 것에서 이 사람의 실패의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인생은 내 것이 아니라 나에 주인이신 주님의 것임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3. 셈할 때를 지혜있게 준비를 하여야 합니다.(5-7절)
[눅]16: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눅]16: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눅]16: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1) 청지기는 남아있는 기회를 선용하여야 합니다.
본문의 나오는 청지기는 자신이 보던 일을 셈할 것을 준비를 착수하엿습니다.
여기에 지혜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자신이 못했던 것, 실패했던 것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이미 지나간 것에 미련을 두지 않고, 주인이 셈하라고 주신 그 남은 시간을 잘 이용했습니다.
그럭저럭 살다 보니 나이가 지긋하게 되어버렸습니다.
"청춘을 잃어버렸습니다."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이라고 할지라도 청춘을 되돌려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잃어버린 청춘을 생각하지 말고, 아직도 손에 쥐고 있는 중년을 생각하십시오.
우리는 아직도 할 일이 많습니다.
꼭 청춘이라야 무슨 일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착각하지 마십시오.
지금 해야 할 일이 얼마나 많습니까? 현재와 다가오는 미래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까지 살아온 생이 옳았는지 그릇됐는지를 생각하고, 냉정하게 비판도 해보십시오. 잃어버린 청춘, 잃어버린 기회에 대해서는 더 이상 연연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나간 천년보다 지금 남아 있는 한 달이 더 소중합니다.
지나간 열두달 보다 지금 남아 있는 몇일이 더 중요합니다.
내가 숨쉬고 있고, 엄연히 내게 맑은 정신이 있고, 건강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지혜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이 청지기는 주인의 마음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무리 보아도 여기에 나오는 주인은 착한 사람입니다.
그 주인은 청지기가 자신의 재산을 가지고 횡령하는 것은 잘못이지만 착한 마음씨를
가지고 좋은 일을 하려고 하는, 그 긍휼을 베푸는 마음을 기특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그래서 왜 내 재산을 가지고 못된 짓을 하느냐고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옳지 않은 청지기가 지혜롭게 했음을 칭찬했습니다.
이렇듯 주인은 자비를 아는 분이요, 긍휼이 많은 분입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이 주인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겠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재산, 우리에게 있는 지식, 권력, 명예 이런 것들을 가난하고,
못 배우고, 약한 사람들을 위해 사용하시기를 원하시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횡령하고 문서를 위조한 이런 방법들이 잘못되었지만, 마지막을 준비하는 그 행동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2)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9절)
[눅]16: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모든 사들은 재물이 많아 부자가 되는 것에 대하여 아주 선호합니다.
부자들의 재물은 사람들에게 좋은 것을 공급하기도 하고, 안락하게 하기도 하고,
여러 사람들을 이용하게도 하여, 부자인 자신에게 아주 유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부자에 대하여 호의적이지 아니하였습니다.
오히려 부자가 천국가기에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까지 하시었습니다.
오히려 부자가 천국가기에 어렵다다면
부자의 물질에 대하여 다시 한번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자들의 입장에서 자신의 물질들이 영원히 내 것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파피 그 물질들이 왔다가 지나가는 것이라면
그 물질을 선용할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그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고 말씀하십니다.
나에게 주어진 소유와 물질들로 친구를 삼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청지기적인 삶의 정신입니다.
이 본문은 오늘 우리에게 "너는 청지기로서의 나의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가?
내가 너에게 맡긴 물질을 이웃사랑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하고 있느냐?" 는 것을 묻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누가 지혜로운 사람입니까? 자신이 처한 현실을 아는 사람입니다.
내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을 할 수 없는지, 해야할 일이 무엇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 지금 있는 것으로, 지금 있는 기회로, 지금 있는 재물로 맡겨 주신 분을 기쁘게 해 드리는 것이 청지기의 지혜입니다.
지금까지 성실하게 살지 못했을지라도, 그것이 중요하지 않습니다.
불의한 청지기요, 불의한 재물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마지막에 지혜로운 청지기가 되어야 합니다.
마지막 한 번의 기회가 남았습니다.
여기서도 잘못하면 영원히 실패하는 것입니다.
마지막때가 다가올수록 주인이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시다.
그분에게 영광이 되는 삶을 삽시다.
3)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13절)
[눅]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좋은 것을 얻으려면 버릴 것을 버리어야 합니다.
우리의 목숨이라고 하는 생명은 하나입니다.
우리의 인생길도 오직 한길인 천국길 하나 입니다.
이 천국길은 재물을 주인으로 섬기는 자에게는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요한 사도는 지금이 마지막 때임을 말씀하십니다.
[요일]2:18 아이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는 말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 줄 아노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다시 한번 재물을 위하여 탐심을 버려야 합니다.
바울은 재물에 대한 탐심은 우상이라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재물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하시는 것입니다.
비록 수고하고 땀을 흘리며 죽도록 노력하여 내가 이루어 만든 재물들에 대하여서라도
더욱 더 선한 일에 선용되어야 할 것입니다.
더불어서 청지기적인 마음으로 재물의 탐익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지혜있는 청지기로 칭찬을 받으라. (눅16장1-13)
1, 나는 청지기 임을 깨달아야 합니다.(1절)
2. 주인의 샘할 때가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2절)
3. 셈할 때를 지혜있게 준비하여야 합니다.(5-7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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