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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느니라.(호11장1-12절)
정오영 2022.7.25 조회 530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느니라.(111-12)

 

제가 어렸을 때에 학교갔다가 집에다가 책 가방을 던져놓고 저쪽 큰 동내로 나아가 놀다보면 해지는 줄도 모르고 놀아댈 때가 있습니다.

정신 팔려 놀다보면 어두운 저 멀리서 오영아......오영아.....어머니의 화난 목소리가 들립니다.

깜작 놀라 예....큰소리로 대답하고 달려갑니다.

어머니 앞에 도착할 때 쯤에 화나신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매질할 것처럼 화가 난 목소리로 혼내치십니다.

나는 어머니가 문을 잠가버릴 것이라든지, 마픈매로 때리지 않을 것을 압니다.

다시는 늦지 아니하도록 하려고 살작 겁을 주시는 것 뿐 임을 압니다.

나는 어머니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시는 지를 알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에서 하나님은 얼마나 이스라엘을 사랑하시는 가를 알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얼마나 큰 사랑으로 끝없는 사랑하시는 지를 마음깊이 새기어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끝없는 큰 사랑이 얼나나 큰지,높은지, 깊은지를 깨달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의 말씀이 이 끝없이 큰 사랑의 이 말씀입니다.

우리가 믿는 신앙의 대상은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 부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구속의 큰 일을 시행하심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아무리 자식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인간의 사랑은 유한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서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무한하시다는 것을 선포하십니다.

[]11:1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내가 사랑하여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불러냈거늘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에 애굽에 있었다고 말합니다.

이들은 에굽에서 종살이 할 때에 세밀한 계획에 따라 불러냈다고 하십니다.

어렸을 때부터 종살이를 하면서 한숨과 원망의 세월을 보내야만 하는

비참한 생활에서 불러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왜 불러냈다고 하십니까? ...

내가 사랑햐여 내 아들을 불러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아들이 종 노릇하고 있는 것을 차마 두고 보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아들이었기 때문에 불러내어 가까이 두고 싶어 불러낸 것입니다.

그런데 2절에서는 무어라 말씀하십니까?....다같이 일어보겠습니다.

1. 부르고 또 계속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11:2 선지자들이 그들을 부를수록 그들은 점점 멀리하고

바알들에게 제사하며 아로새긴 우상 앞에서 분향하였느니라

부를수록 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자주 불렀다는 것입니다.

왜 불렀겠습니까? 사랑하여 가까이 두고 싶어서였습니다.

바로 그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까이 두고자 하셨습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을 계속하여 보내시고 부르셨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어떻게 부르셨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

얼마나 멋지고 신나는 부르심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으로 멋진 것들을 준비하시고 초대하고 계십니다.

예레미아를 통하여서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끊임없이 부르시었습니다

[]7:25 너희 조상들이 애굽 땅에서 나온 날부터 오늘까지 내가 내 종 선지자들을 너희에게 보내되 끊임없이 보내었으나

[]7:26 너희가 나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 아니하고 목을 굳게 하여 너희 조상들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구약에서는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선지자들을 통해서 저들을 부지런히 부르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 외에도 많은 방법으로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부르셨습니다.

때로는 직접 나타나셔서 부르시기도 하시고 꿈과 환상을 통해서 부르시기도 했습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신약 시대에도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하십니다.

때로는 목회자를 통해서 말씀 선포와 신앙지도를 통하여 부르십니다.

때로는 성경 말씀을 통하여 부르실 때도 있습니다.

때로는 특별한 환경을 통해서 부르시기도 합니다.

때로는 세미한 음성으로 성령의 감동으로 여러분들의 심령을 두드리십니다.

이런 여러모영으로 하나님의 음성이 자주 들리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음성이 잘 들리지 않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께서 부르시지 않아도 될 만 큼 멋지고 아름다운 삶을 사시기 때문입니까?

하나님과 내가 머무 멀리 떨어져 있기 따문입니다.

죄악이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았고, 죄로인하여 내 심령이 굳어졌기 때문입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이 자주 들리지 않는 분들이 계시다면 기꺼이 주님을 영접하고 주님과 함께하시기를 소망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가까이 두시려 하는데 이스라엘은 자꾸만 자꾸만 도망을 치고 있습니다.

이 도망자의 모습이 바로 부패한 이스라엘의 모습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들려야 합니다.

하나님앞에 회개함을 통하여 진리의 말씀을 따라 나오십시오.

하나님앞에 나아와 하나님과 영적인 교제하시기를 축원합니다.

 

2. 걸음을 가르치고 고치시는 하나님입니다.(3)

[]11:3 그러나 내가 에브라임에게 걸음을 가르치고 내 팔로 안았음에도 내가 그들을 고치는 줄을 그들은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은 부르시어 걸음마를 가르치십니다...<그러나>

<그러나> 불러내에 걸음마를 가르치는데도 그들은(이스라엘은) 알지 못하였습니다.

사람들이 갓난아이의 두 손을 잡고 걸음을 가르치는 부모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이 시간이 아버지에게는 얼마나 소중하고 즐거운 시간이었겠습니까?

아장아장 한발 한발 걸음마를 배우는 아이가 얼마나 대견 스러울 것입니까?

아이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쳐 보셨다면 이런 하나님의 마음이 이해가 되실 것입니다.

한 발 자국 뛰는 것 보다 넘어지는 횟수가 더 많아도 넘어지는 것을 탓하지 않고

한 번 걷는 그것을 보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걸음마를 가르치지 않습니까?

그러다가 어쩌다 한 번 걷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날은 난리가 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걸음마를 가르칠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좇는 일에 있어서 좀 뒤뚱거리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신나는 마음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걸음마를 가르쳤습니다.

어떤 엄마들은 아이들이 자라날 때에 매일 일기까지 써가면서 오늘은 세걸음, 오늘은 네걸음,오늘은 다섯걸음을 하다가 넘어졌다....하하하..메모합니다

이것이 바로 어버이의 마음입니다.

수많은 불순종의 넘어짐이 있지만 그래도 미래에는 잘 걷겠지 하면서 한 번 걷기를 기대하는 아버지의 심정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팔로 안아 고치시는 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걸음마를 배우다가 혹여 넘어질까봐 아이의 모습에서 눈을 떼지 아니하다가 넘어지려면 급히 앉아주시는 것처럼 하나님게서 앉아주신다는 것입니다.

이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내 팔로 안았음에도 알지 못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31:3 옛적에 여호와께서 나에게 나타나사 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하였노라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택한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이러한 큰 사랑으로 팔로 안아주시고 고쳐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이 처음부터 잘 걸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때로는 넘어질 것을 알고 계시면서 안아주시려고 준비하고 계심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걸음마를 배우고 아직 부족하여 넘어질 때에 하나님은 실망하지 않습니다.

더욱이 가까이 오시어 품어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함도, 우리의 넘어짐도 실망하시지 않으시면서 넘어지는 것보다 일어나는 것을 더 기대하시는 것입니다.

아가야 어서 일어나봐라,,,,, 여기 내 손잡고 일어나 봐라....하듯이 하나님은 오늘도 사랑하는 자녀들이 일어나기를 기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사랑으로 펴신 팔을 붙들고 일어나기를 기다하는 것입니다.

때로는 우리들이 상처난 가슴을 안고 아파하고 있을 때 우리들을 치료해 주시며 손은 고치는 치유 손이다, 하면서 만져 주시기도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기대하시며 그 사랑을 붙드시기를 축원합니다.

 

3. 사랑의 줄로 이끄시는 하나님이십니다.(4-7)

 

[]11:4 내가 사람의 줄 곧 사랑의 줄로 그들을 이끌었고 그들에게 대하여 그 목에서 멍에를 벗기는 자 같이 되었으며 그들 앞에 먹을 것을 두었노라

1) 사랑의 줄로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랑의 줄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사랑의 줄로 여겨지지 않았습니다.

싫고 귀찮은 존재로 여겨진 것 같습니다.

사춘기의 아이들을 키우다 보면 아이들이 부모의 마음을 오해할 때가 있습니다.

부모는 분명히 사랑으로 다가 가는데 아이들은 그게 귀찮고 싫게 느껴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그렇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다가가는데 무거운 멍에를 씌우는 것으로 여기는 것입니다.

에레미아를 통하여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3:33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시로다

인생으로 고생케 하시는 것이 본심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멍에를 벗기는 분이지 다시 멍에를 지게 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멍에를 벗길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랑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은 말씀하십니다.

[요일]4:8....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일]4: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를 이 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밖히시므로 열매를 맺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과 함께하시기를 원하시는 사랑이었습니다.

[요일]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사랑을 입는 자들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들에게 멋진 음식을 차리시기도 하십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밤이 맟도록 수고를 하고 지쳐 있는 새벽녘에 아침을 준비하시고 저들을 부르시고 따뜻한 음식으로 먹이셨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의 삶을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자비하신 모습으로인자하신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가오시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1:5 그들은 애굽 땅으로 되돌아 가지 못하겠거늘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 앗수르 사람이 그 임금이 될 것이라.

결국 저들은 어떻게 됩니까?

내게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앗수르로 잡혀가게 되고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가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앞에 돌아 오기를 싫어하니 잡혀가고, 끌려가고, 종살이가 다가오는 것입니다.

[]11:6 칼이 그들의 성읍들을 치며 빗장을 깨뜨려 없이하리니 이는 그들의 계책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여호와께 돌아오기를 싫어하면 깨트려진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2)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7)

[]11:7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비록 그들을 불러 위에 계신 이에게로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내 백성이 끝끝내 내게서 물러가나니

끝끝내라는 말은 내 백성이 나를 의심하고 배교하니...........라는 말입니다...

내 백성이 내게서 등을 돌리기로 작정했다. 라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의 참람한 모습이 보이는 둣 합니다.

돌아오라 할지라도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도다

그래도 저들을 불렀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저들을 향해서 간곡하게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자신의 길을 돌이키기 위해서 일어나는 자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당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에게로 나아가 하나니을 실망시킨 모습을 보시며 하나님께서 안타까워하시는 마음이신 것입니다.

간곡하게 불러도 아무도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아무리 불러도 끝끝내 돌아오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의 현실에서 타협하며 신앙생활을 하는지를 다시 살피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부르십니다.

속히 돌아오고, 속히 주님을 영접하고속히 주님 안으로 돌아오기를 결단하시기를 축원합니다.

 

4.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8)

[]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사람들은 지능이 있어 될일과 안될 일은 잘도 계산합니다.

사람들의 시각, 미각, 청각등은 모든 것들을 보고 듣고 계산하여 나름의 판단을 하게 됩니다.

될 것과 안 될 것을 미리 판단하여 성급한 포기와 절망에 빠지곤 하는 존재입니다.

1)하나님은 택한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비록 저들이 하나님으로 부터 멀어지기 위해서 생명을 걸었지만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모든 것을 끝장내지 않았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알 수 있는 단어가 8절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어찌>라는 말입니다.

이 말이 4번이나 반복이 되면서 결코 여기서 끝날 수 없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아드마같이 놓겠느냐? 어찌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말하는 아드마(소돔)와 스보임(고모라)성이 멸망당할 때 당시의 성읍들 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놓을 지언정 이스라엘은 결코 놓지 아니한다는말씀입니다.

[]49:15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잠시 포로로 잡혀가게 될 것이지만 그것으로 영원히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저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여기서 포기하시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으십니다.

끝까지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내가 나를 살펴보면 나는 아무것도 아닌데 사랑을 받을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바로 이런 사랑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쏟아지고 있습니다.

 

2)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8)

[]11:8.....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하나님의 긍휼이 불붙듯 하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놀라운 사랑입니다.

끝없이 반역의 길을 향해 가던 이스라엘 백성들일지라도 이 뜨거운 사랑으로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런 뜨거운 사랑이 우리를 향하고 있음을 깨달으시기를 축웜합니다.

우리들에게 있는 수많은 허물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허물들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사실 이런 허물들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런 불붙는 사랑 앞에서는 우리들의 이런 허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사랑에 불붙었기 때문에 상대의 모든 허물들이 보이질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와 여러분들을 불붙는 사랑으로 저와 여러분들을 사랑하시는 것입니다. 이 불붙는 사랑이 저와 여러분들에게 쏟아지고 있음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3)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11:10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11:11 그들은 애굽에서부터 새 같이, 앗수르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사자처럼 소리를 발하시는 모습으로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리를 발하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를 좇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어미 사자가 새끼사자가 보이지 아니하면 어흥....어흥.....하면서 새기사자를 부릅니다.

아마 온 숲이 쩌렁쩌렁 울릴 것입니다.

소리에 놀라 모든 짐승은 숨을 죽일 것이지만 새끼사자들은 어미 앞으로 달려옵니다.

사자 새끼들은 어미 사자가 찾는다고 어미품으로 달려올 것입니다.

그러나 새끼 사자에게는 오히려 그 소리가 기쁨의 소리가 될 것입니다.

반가움의 소리가 될 것입니다.

길을 잃은 새끼 사자에게 이 어미사자의 소리 만큼 반갑고 정다운 소리도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치 새끼 사자를 찾는 것 같이 그렇게 찾아 나서면

이 소리를 듣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돌이키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길을 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소리를 듣고 하나님 앞으로 몰려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바로 그와 같이 자신의 백성들을 모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일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구체적으로 시작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건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모여들고 있습니다.

이 곳 저 곳에서 길을 잃고 방황을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님께 나아가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도 주님은 우리들을 부르십니다.

이 부름의 소리를 따라 주님을 향하여 가까이 더 가까이 나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느니라.(111-12)

1. 부르고 또 계속 부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2)

2. 걸음을 가르치고 고치시는 하나님입니다.(3)

3. 사랑의 줄로 이끄시는 하나님이십니다.(4-7)

4. 끝까지 버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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