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6. 드로아
- 박진숙 2016.6.13 조회 3023
-
6) 드로아
(1) 지명 연구
드로아( tro-as' : 트로아스)는 ‘관통’이라는 뜻으로 Tros<트로스> (드로아인)에서 유래 되었다. 정식 명칭은 ‘알렉산드리아 드로아’ 이고, 소아시아 서북부의 한 지방으로 프로폰트 해(Propontis, 지금의 마르마라 해 Marmara Denizi)와 헬레스폰트(Hellesphont) 해협의 남쪽에 위치하고 있는 지역이다. 현재 지명은 달얀(Dalyan)이다.
(2) 역사적 배경
소아시아의 무시아(Mysia) 서북안에서 마게도냐에 건너가는 관문이다. 오늘날은 터어키 영의 에스키 스탄불(Eski Stanbul)이라 하는 황폐한 고지(古地)에 불과하다. 유명한 트로이(Troy)의 남쪽 25㎞ 지점에 있는데, 원래는 지방의 이름이었으나 후에 성읍의 이름으로 되었다. BC 310년 경 안티노고스(Antigonus)가 건설하고, `안티고니아 드로아'라 부르고, BC 300년 경 류시마코스(Lysimachus)가 확장하고 알렉산더 대왕을 기념하여 `알렉산더 드로아'라 명령하였다. 아구스도의 치세에 로마의 식민 도시로 되고, 완전한 이름은 Colonia Alexandria Augusta Troas라 하였으나, 일반적으로는 생략되고 단순히 `드로아'(Troas)라 불리 웠다. 로마 시대에는 아시아와 마게도냐를 잇는 요항으로서 번영하였고, 신전, 극장, 목욕장, 또 특히 트라야누스(Trajanus) 황제가 만든 도수교(舊水橋) 등의 유물이 발견되어 그 옛날의 번영을 말해 주고 있다. 고지(古地)는 떡갈나무 숲에 덮여 있으나, 주위는 9.6㎞에 달한 성벽은 아직도 군데군데 남아 있다. 대리석의 원주(圓柱)와 그 밖의 부분은 이스탐불(Istambul)의 발리데(Yeni Valideh Jami) 이슬람교 회당을 건립하기 위해 가져갔다.
드로아 항구는 마게도니아와 그리스를 잇는 에게 해(Aegean Sea)의 중요한 항구도시들 중 하나이다(행 16:8, 20:5, 고후 2:12). 드로아는 지중해 연안 소아시아 북서쪽 항구 도시로서 이곳을 통하여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간다. 드로아에서 마게도니아까지 약 160km 떨어진 곳이다. 드로아는 에베소보다도 인구가 많았던 번창한 대 항구도시였다.
(3) 성경 본문
(행 16:8~10)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 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거늘 바울이 그 환상을 보았을 때 우리가 곧 마게도냐로 떠나기를 힘쓰니 이는 하나님이 저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인정함이러라.
바울은 드로아에서 밤에 환상을 보았다. 환상 중 마게도냐 사람의 청을 받고 그것이 유럽에서 선교활동을 하도록 지시하는 하나님의 뜻으로 알았다. 이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16:8~10)은 헬라화 된 유럽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소명이었다. 하나님은 “바울 사도와 그의 일행을 위해 이중 안내”를 하신다. 즉 한편으로는 ‘금지와 제한’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허락과 촉구’를 하신다. 한 방향으로는 ‘금하고’ 다른 방향으로는 초청을 한 것이다. 드로아에서 누가가 바울과 합세하여 여행한다. 누가는 전통에 의하면 안디옥 출생으로 전해진다. 이제 바울을 리더로 한 실라, 디모데, 그리고 누가로 형성된 완전한 선교사단이 이루어졌고 그들은 배를 타고 마게도냐로 향했다.
(4) 동역자 : 누가
수리아의 안디옥에서 출생한 이방인이었던 누가("빛을 주는 자"라는 뜻)는 바울로부터 감화를 받은 것으로 짐작 되어 진다. 새롭게 거듭난 누가는 육신의 질병을 치료하는 의사에서 병든 영혼에 치료의 광선을 전해주는 의사로 변화되었다. 그 후 누가는 의료 활동을 통하여 수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안정된 환경을 박차고 바울을 따라 나섰다.
누가는 사도 바울의 동역자였다. 이때로부터 누가는 바울의 지병(바울의 가시)을 담당한 의사이자 선교의 통역자로서 분주한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 누가는 의사로서 사도 바울의 전도에 동참하였고, 사도 바울이 제1차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 누가도 같이 투옥 되었다(골 4:14 ; 몬 24). 그는 사도 바울의 제2차, 제3차 선교여정에도 동행하였을 뿐만 아니라(행 16:10-17; 20:5-21; 27:1-28:16; 몬23 ; 골 4:10-27) 그의 주치의가 되고 친구가 되어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하게 된 것이다. 겸손하고 성실한 사람인 누가는 바울이 순교할 때까지 동행하며 많은 고난을 감수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골로새서 4:14 “사랑을 받은 의원 누가”는 역사가였으며, 누가복음과 초대교회의 역사인 사도행전을 기록하였다. 사도행전의 저자가 누가라는 내증은 없으나, 사도행전 자체가 저자는 누가임을 확신케 한다. 외증으로는 무라토리안 정경(Muratorian Canon, A.D. 170), 초대교회 역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 c.325.)는 사도행전의 저자는 누가라고 하였다.
바울의 이 옥중에서 서신들(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세서, 빌레몬서)을 기록하는 일에도 비서역을 감당하면서 또한 의사로서 건강을 보살폈다.
알랙산드리아 드로아 올드시티 (신전 기둥)
알렉산드리아 드로아 올드시티 (성문어귀)알렉산드리아 드로아 올드시티 (항구로 가는 길)
-
댓글 0